2023년부터 세탁기, 냉장고, TV 등에 재활용 소재(재생 플라스틱)가 얼마나 포함됐는지를 표시하는 인증제가 실시된다. 재활용 소재 활용을 적극 유도해 글로벌 규제 리스크를 해소하고 국가 탄소중립 정책에 동참하도록 할 계획이다. 기업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 등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5일 정부기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2023년 시행을 목표로 가전 품목 재활용 소재 적용 민간 자율 인증제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인증제는 세탁기, 냉장고, TV, 에어컨, 모니터 등 주요 가전 품목 대상으로 재활용 소재가 얼마나 적용됐는지를 살펴본 뒤 그 결과를 인증하는 제도다. 기준을 충족하면 부여하는 일반 인증과 달리 얼마나 많은 재활용 소재가 적용됐는지를 수치화해서 표기하는 자율인증이다.
인증 대상 소재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 등 플라스틱 소재를 기계·화학 가공한 재생 플라스틱이다. 단일 소재로 인증을 시작하되 단계적으로 적용 대상을 늘린다.
내년 초에 인증 대상, 방법 등 구체적 이행계획을 수립한 뒤 연말쯤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 본격 시행은 2023년 상반기를 목표로 한다.
인증제는 기업의 친환경 재활용 소재 활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게 목적이다. 현재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형 가전사 중심으로 재생 플라스틱 적용을 확대하지만 전체 가전에서 재활용 소재 적용 비중은 1% 남짓인 것으로 추정된다. 인증제 실시로 재활용 소재 활용이 우수한 기업은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시작 단계인 기업에는 동기부여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가전 품목의 재활용 소재 활용이 의무화되는 추세 속에서 선제적으로 규제 리스크를 해소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현재 미국 정부는 공공조달 시장에서 재생 플라스틱 등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가전은 판매를 금지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부터 공공 조달 가전 품목에 재활용 소재 적용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단순히 국내 가전 기업에 친환경 소재 이용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다가올 글로벌 규제 리스크 해소를 돕는 것”이라면서 “가전산업에도 친환경 소재 사용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인증을 활용하면 수출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증제가 실시되면 대기업 중심으로 재활용 소재 적용은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재생 플라스틱 사용 비중이 수치화될 경우 기업 친환경 경영 요소의 정량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증제가 실시되는 2023년은 대기업이 ESG 경영 공시가 의무화되는 시점이다.
소비자까지 이 수치를 확인할 경우 구매에도 영향을 미쳐 기업은 관심을 더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300명을 설문한 결과 조사 대상 63%가 '기업 ESG 활동이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할 정도로 구매 의사결정에 친환경 활동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가전 업계는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재생 플라스틱 적용을 늘리고 싶지만 생산 단가가 치솟고 원료 생산 인프라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직접 구매나 폐가전 수거 후 재활용까지 자원순환 역량을 보유했지만 중소기업은 이마저 어려워서 자칫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도 중소기업 제품을 들여와 최종 조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소기업이 재활용 소재 활용 여력이 안 되면 완제품도 적용 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재생 플라스틱 수급 방안과 함께 중소기업 지원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