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초 몽골 장군 수부타이는 서아시아,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를 석권하고 오스트리아를 공략하려다 갑자기 돌아갔다. 유럽인은 사악한 유대인을 방치해서 몽골군이라는 천벌을 받았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유대인을 처형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7세기 초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가짜뉴스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소에 끌려갔다. 처벌이 무서워서 잘못을 인정했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라고 중얼거렸다.
프랑스는 2018년 정보조작방지법을 제정,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통한 가짜뉴스 유통을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가짜뉴스를 막거나 처벌하는 많은 입법이 시도됐고, 현재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언론사는 가짜뉴스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일부 언론사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증권·기상예보 등 간단한 기사를 내보내고, AI앵커까지 나왔다. AI를 활용하면 데이터 수집·분류·결합·가공을 통해 풍부한 정보를 담은 기사를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AI 기반으로 딥페이크 등 기술을 활용하면 독자를 현혹하는 가짜뉴스도 만들 수 있다.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진실 아닌 사실을 기반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체 또는 특정 분야에 관한 보도·논평·여론·정보를 기사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의 진실을 나타내는 것은 오직 하나의 글이다. 대법원은 전체 맥락과 중요한 부분이 사실이라면 약간 다르거나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더라도 진실로 본다.
가짜뉴스를 처벌할 필요가 있을까. 진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으로 여론 형성에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이 탈진실(Post-truth)이다. 정치 맥락에서 진실이 중요하지 않게 된 상황을 나타낼 때 쓴다. 작가 스티브 테시치는 도널드 레이건 정부가 이란에 대한 무기 판매 수익으로 니카라과 반군을 지원했다며 “우리는 스스로 탈진실의 세상에 살겠다고 선언했다”고 풍자했다. 탈진실 시대에 가짜뉴스를 허용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가짜뉴스는 사생활이나 명예 훼손, 재산 손실만이 아니라 기업 가치·신뢰를 떨어뜨려서 주가를 하락시키는 등 경영 위기를 초래한다. 진실을 바탕으로 의견을 당당하게 표출하는 사회가 민주사회다. 진실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 물론 진실을 하찮게 여길 수 있어도 진실이 뭔지 모르면서 진실을 벗어난 신념을 가질 순 없다. 가짜뉴스는 처벌돼야 한다.
그런데 가짜뉴스는 현행법에서 이미 처벌되고 있지 않은가.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선거법 위반 등 처벌이 그것이다.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도 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가짜뉴스가 나와 유권자를 현혹한다면 당선될 후보가 낙선하고 낙선될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가짜뉴스로 사생활이나 명예가 훼손된 자가 진실을 밝히는 방법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가짜뉴스가 주식·부동산·암호화폐 가치에도 급격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피해를 회복하기도 쉽지 않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가짜뉴스 판단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잘못을 빨리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수사기관, 법원이 공정하게 판단하리란 보장도 없다. 그 사이에 개인 사생활, 회사 경영 피해를 넘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
그렇다면 가짜뉴스를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까. 인터넷사업자에 가짜뉴스를 삭제·차단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뉴스의 거짓 여부를 판별하는 능력이나 법적 권한이 없다. 가짜뉴스를 올린 자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면 손해배상책임을 뒤집어쓸 위험도 있다. 독자가 속지 않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사실관계를 다르게 보도하는 기사 비교 시스템 등 독자가 직접 판단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을 만들면 어떨까. 가짜뉴스 탐지를 위한 AI 알고리즘의 지속 개발도 중요하다. 물론 가짜뉴스를 막는다며 21세기의 갈릴레이를 막아서도 안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