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음악저작자(작사·작곡자) 가운데 절대 다수는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 신탁관리단체에 맡겨서 관리한다. 신탁관리단체 약관에 따르면 음악저작자가 창작하는 음악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별도의 계약 없이 자동으로 신탁관리단체에 이전돼 관리된다.
그런데 최근 영화제작업계 현실을 보면 영화음악 저작자들이 이러한 신탁계약 약관에도 영화제작사 등과 영화를 위해 창작한 곡에 대한 저작권 양도 또는 이용 허락 계약을 이중으로 체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신탁계약 약관에 위배되는 행위로 '이중양도'에 해당하고, 법적으로 배임 문제로 다뤄진다.
그렇다면 왜 영화음악 저작자들이 이중양도의 배임 행위를 하는 것일까. 들리는 이야기로는 아무래도 협상력에서 우위에 있는 영화제작사들의 명시·묵시적 요구에 의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음악저작자 입장에서는 저작권을 영화제작사에 양도하지 않고 신탁관리단체를 통해 관리하면서 그 음악저작물이 사용될 때마다 사용료를 분배받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저작권을 한번 양도하면 그 후부터 그 저작물의 사용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수익은 양수인인 영화제작사가 다 가져가게 되고, 창작자인 작사자나 작곡자는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 분야의 신탁관리단체는 절대 다수의 음악창작자를 회원으로 하고 있고, 대규모 조직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시나리오 작가, 감독이라는 이름이 붙은 스태프와 그 보조자들, 연기자들이 영화제작사에 자신의 권리를 대등한 지위에서 주장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나마 강력한 신탁관리단체 시스템을 갖춘 음악저작권자만이 신탁 관리를 기반으로 영화제작사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중양도의 관행이 쌓이면 오랜 세월에 걸쳐 자리 잡은 신탁관리제도는 영화음악 분야에서부터 허물어질 공산이 있다. 그렇게 되면 창작물의 향후 수익으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없어 음악저작자에게 불리할 뿐만 아니라 그 음악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용자에게도 큰 불편을 초래한다. 저작물 이용자 측면에서 본다면 저작권이 특정한 기관이나 단체에 집중돼 있어야 이용하고자 하는 저작물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어 편리하다.
나아가 신탁관리제도는 이용 형태와 조건에 따른 사용료의 정형화를 통해 누구라도 동일한 조건에서 원하는 권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평등한 이용 기회를 보장한다. 만약 영화제작사가 저작권을 양수해서 행사하게 되면 이용자들은 영화에 사용된 음악을 사용하려 할 때마다 영화제작사들을 개별적으로 찾아다니면서 이용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 번거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이 커서 일반 개인 이용자는 사실상 이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문제가 있는 이중양도 관행이 쌓이는 것을 방치만 하고 있을 것인가.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유권해석이나 사법 당국의 합리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행 저작권법 제54조 제1호를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라고 개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번 양도된 저작권은 다시 찾아올 수 없다. 반면에 신탁 관리는 저작자가 원하면 언제든 해지하고 저작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이른바 '구름빵' 사건에서 한 장래성 있는 작가가 무명 시절 자신의 저작물을 헐값으로 제작사(출판사)에 양도함으로써 나중에 그 저작물로부터 엄청난 수익이 창출됐음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례를 봤다. 음악창작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영화음악 창작자들은 영화제작자와 계약하면서 '을'의 지위에 있기 마련이다.
이들이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 영화제작자들과 공정하고 평등한 지위에서 계약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교섭력을 영화제작사와 대등할 정도로 강화하고 향후 자신의 창작물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신탁관리단체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러한 신탁관리단체의 역할이 '이중양도'라는 수단으로 형해화되면 안 된다.
오승종 홍익대 교수 osjla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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