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을 마무리하며 경영정상화에 돌입했다. 잇단 자산 매각을 통해 차입금 규모를 큰 폭으로 낮췄고, 천문학적 소송 리스크도 해소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3조원대 규모 금융 지원을 받은 지 불과 1년여 만에 '선택과 집중'으로 내실을 갖췄다. 두산그룹은 친환경·신재생 사업을 중심으로 한 체질 변화로 지속가능성을 높일 전기를 마련했다.
◇뼈를 깎는 재무구조 개선 마무리…경영정상화 시동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두산은 올해 2분기 말 연결 기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빌린 차입금 가운데 절반 이상을 갚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두산은 2020년 상반기 긴급운영자금 명목으로 채권단으로부터 3조원을 지원받았는데, 남은 채무잔액이 1조3969억9000만원까지 낮아졌다.
두산그룹이 '긴급 수혈' 1년여 만에 채무를 큰 폭 줄일 수 있었던 것은 고강도 재무구조 개선 노력 덕분이다. 앞서 두산그룹이 채권단과 체결한 약정서에는 박정원 회장 등을 비롯한 특수관계인과 ㈜두산 등 지배기업, 두산중공업 등 핵심 계열사 등이 비핵심자산 등을 잇달아 매각, 3조원 이상을 확보해 상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과정에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등 총수일가는 ㈜두산 보통주와 우선주 등을 담보로 제공, 책임 분담에 나섰다.
두산그룹은 단계적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구체화하고, 이를 실행했다. 두산솔루스(6986억원), 두산인프라코어(8500억원), 두산타워(8000억원), 클럽모우CC(1850억원), 벤처캐피털(VC) 네오플럭스(730억원), ㈜두산 모트롤(4530억원)·산업차량(7500억원) 등 자산을 잇달아 매각했다. 4조원에 육박하는 매각자금을 손에 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두산그룹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내실을 다졌다. 대표적인 것이 ㈜두산 모트롤과 산업차량 사업부문 매각이다. 산업차량의 경우 1968년 사업 시작 이래 이 분야 국내 1위를 유지하는 캐시카우였으나, 최근 들어 하향세가 뚜렷했다.
이에 ㈜두산은 사양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하는 대신 전자와 디지털이노베이션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집중키로 했다. 특히 전자 부문은 반도체와 자동차, 가전제품 등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부품과 인쇄회로기판(PCB)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 OLED 디스플레이 핵심 전자 소재 등을 개발, 장래가 유망하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수익성을 중심으로 한 경영합리화 계획과 자산 매각 등에 따른 차입금 감축 등 재무구조 개선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면서 “채권단과 약정한 대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 경영정상화를 목전에 뒀다”고 말했다.
최근 두산그룹은 그동안 발목 잡던 소송 리스크도 해소했다. 앞서 피소당한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소송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간 끝에 승소, 원고 측 소송 취하를 이끌어냈다. 이 소송 가액은 최대 1조원으로 추산됐으나, 두산인프라코어는 최소 금액인 3020억원을 내고 원고 측 보유 DICC 지분 20%를 되사오는 데 합의했다.
애초 두산그룹은 올해 두산인프라코어를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했으나, DICC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확정배상액(우발채무)을 책임지는 약정을 체결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핵심 계열사였던 만큼, 당시 두산그룹은 소송 부담을 지고서라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분골쇄신'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 내에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구체적 구조조정 성과가 나타나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두산그룹, 친환경·신재생 입고 새 출발
두산그룹 핵심 계열사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두산중공업, 두산퓨얼셀, 두산밥캣, 두산건설, 두산큐벡스 등으로 축소됐다.
두산그룹은 빠르게 친환경·신재생 중심으로 사업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두산중공업과 두산퓨얼셀이다. 각각 발전 설비와 발전용 연료전지 등 사업을 영위 중인 양사는 정부가 추진 중인 그린 뉴딜 정책과 맞닿아있다. 앞서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수소경제활성화 로드맵'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법 개정' 등을 아우르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 2034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6.3%까지 늘리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은 기존 원자력·화력 발전 설비 비중을 낮추는 대신 풍력 등 친환경 발전 시장 공략을 가속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해상풍력 사업을 오는 2025년 연 매출 1조원 이상 사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해상풍력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개발 및 보급 등에 주력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2011년 국내 최초로 3㎿급 해상풍력발전기를 개발한 데 이어 지난 2018년에는 8㎿급 개발에 착수했다. 오는 2022년 제품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유일 해상풍력 단지 조성 이력도 보유했다. 해상풍력단지 설계부터 제품 공급 및 설치, 시운전, 유지·보수(O&M) 등 사업 전 영역을 수행 가능하다. 정부가 2030년까지 12GW에 이르는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구축한다는 목표인 만큼, 수혜가 기대된다.
특히 두산중공업 풍력발전기 1기당 국산화율은 약 70%에 이른다. 풍력발전기에 들어가는 블레이드와 타워 등 국내 밸류체인에도 긍정 효과가 예상된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에 투자를 가속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해상풍력 등 핵심기술 국산화와 신제품 등 무형자산 개발을 위해 올해 1776억8700만원을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20년 1365억3900만원보다 약 30% 증가한 것이다. 오는 2022년도와 2023년도에도 각각 1447억3600만원, 1114억5900만원을 투자해 기술력을 제고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에 두산퓨얼셀은 차세대 에너지원인 수소 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 최초로 50㎿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 순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준공,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수소경제 발전소 모델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수소와 전기, 열을 동시 생산할 수 있는 트리젠(Tri-gen) 모델을 개발해 실증 및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차세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시스템 개발 및 생산설비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두산퓨얼셀은 앞선 수소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근 3년간 신규 수주액 1조원을 올렸고, 오는 2023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매출 목표를 잡았다.
두산그룹은 각 신재생에너지 사업에서 강점이 있는 두산중공업과 두산퓨얼셀을 중심으로 수소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양사에서 핵심 인력을 차출해 수소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했다. 수소 생산부터 저장, 운반, 발전, 모빌리티 등에 이르기까지 수소 전반 밸류체인에서 새 수익원을 창출한다는 복안이다. 수소 모빌리티 영역에선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이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룹 역량을 모아 친환경·신재생 사업에서 최대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면서 “특히 수소 사업의 경우 TFT를 통해 빠르게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