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방송통신 이슈 가운데 하나가 사업자 간 거래 대가 분쟁이다. 유료방송 사업자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프로그램 사용료, 인터넷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는 망 이용 대가, 앱마켓 사업자와 앱 개발사는 결제 수수료를 놓고 줄다리기하고 있다.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슈가 TV홈쇼핑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홈쇼핑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이다. 홈쇼핑 송출수수료는 TV홈쇼핑 사업자가 유료방송 채널을 사용하는 대가다. 지난 2019년 홈쇼핑 송출수수료 총액은 약 1조8278억원으로 TV홈쇼핑·T커머스 홈쇼핑 방송 사업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TV홈쇼핑 사업자는 송출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고 주장하며 정부가 '합리적 거래 환경'을 만들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합리적 송출수수료 산정을 위한 정부의 중재는 사실상 송출수수료 상한에 대한 규제를 의미, 이것이 과연 시장과 소비자를 위해 바람직한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홈쇼핑 송출수수료는 사적 자치 원칙이 적용되는 자율계약 대상이다. 자율계약에서는 '적정한' 또는 '합리적' 가격이라는 것이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 규제 없는 시장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높은 매출을 올릴 자신이 있는 홈쇼핑 사업자는 많은 송출수수료를 지불하더라도 상위 채널을 확보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홈쇼핑 사업자는 하위 채널을 선택해서 송출수수료를 절약할 것이다.
그 결과 어떤 홈쇼핑 사업자는 매출의 절반 이상을 송출수수료로 사용하고, 어떤 사업자는 3분의 1만 사용할 수 있다. 만약 홈쇼핑 사업이 전체적 침체를 겪게 돼 어느 사업자도 비싼 가격에 상위 채널을 이용하려 하지 않으면 송출수수료는 자연스레 낮아지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유료방송 시장은 독·과점화가 돼 있는 반면에 TV홈쇼핑은 채널을 확보하지 못하고서는 사업 영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협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협상력 불균형은 어느 거래에서나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정부가 개입해서 협상력이 약한 측을 보호할 수가 없다. 설령 보호한다 해도 자구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대상에 한정해야 한다.
홈쇼핑 사업자 대부분은 대기업 계열사다. 송출수수료 성격과 유사한 점포임대료의 인상폭을 규제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도 환산보증금 9억원 이상 고액 임차인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홈쇼핑 시장은 정부 승인을 통해서만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업자 수가 정해져 있다. 이에 따라 유료방송 사업자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정도의 협상력이 없다.
홈쇼핑 사업자는 협력업체 제품을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홈쇼핑 송출수수료에 대한 또 하나의 규제 논리는 높은 송출수수료가 판매수수료 인상을 촉발, 결국 그 부담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콘텐츠 가격 인상 압박에 직면하고 있는 유료방송 입장에서는 홈쇼핑 송출수수료 인상에 제한을 받으면 수신료를 인상해서 비용을 충당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이 부담은 시청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판매수수료와 유료방송 수신료는 정부의 직간접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송출수수료 부담이 소비자와 시청자에게 전가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몇 겹의 규제로 인위적 시장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소기업을 위해 낮은 판매수수료를 유지하고 싶다면 홈쇼핑채널 허가제도를 개선, TV홈쇼핑 시장의 경쟁 수준을 높이는 것이 정공법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홈쇼핑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1차 협상을 진행하고, 결렬 시 경매를 통해 채널과 송출수수료를 결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송출수수료 산정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산정식에 따라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송출수수료를 직접 규제하는 대신 시장을 통해 결정될 수 있도록 하고, 판매수수료는 홈쇼핑 사업자의 경쟁 활성화를 통해 인상을 억제한다는 방향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유료방송 사업자와 TV홈쇼핑 사업자는 모두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경쟁자로부터 강한 경쟁 압력을 받고 있다. 당장은 정부 보호가 좋을지 몰라도 가입자가 감소하는 케이블TV 사례를 답습할 수 있다. 정부는 방송시장의 모든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하고, 시청자와 소비자 후생이 증가한다면 더욱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박민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minsoopark@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