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땅 속으로 꺼졌다.”
영화 '싱크홀' 주인공 박동원(김성균 분)은 서울 상경 11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서울 변두리 아담한 빌라 5층, 더 이상 전세금 인상과 이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역세권도 신축 아파트도 아니지만 가장 안락하고 든든한 보금자리다.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싱크홀은 빌라도 꿈도 모두 집어삼킨다.
싱크홀은 지반이 내려앉아 지면에 커다란 웅덩이나 구멍이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한 순화어는 '땅꺼짐' 현상이지만 해외 토픽 뉴스 등에서 이색 사건으로 접한 싱크홀이 익숙하다. 2010년대 이후 들어서는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싱크홀은 발생하는 지역과 크기,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서서히 땅이 무너져 내리는가 하면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영화처럼 도심지에서 큰 피해를 동반하는 싱크홀은 대다수 '표층 붕괴형'이다. 지면 아래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도로나 건물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 밑으로 주저앉는 것이다. 지하 공동이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다. 인근 공사 작업이나 상수도관 파열 등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지하 암반이 오랜 시간에 걸쳐 침식된 결과일 수도 있다.
세계 최대 수직 싱크홀로 알려진 멕시코 제비동굴은 지름이 50m, 깊이가 375m에 이른다, 문명 시대 이전 고대에 생성돼 지금은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 환경이자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싱크홀은 보통 땅속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지층이 어긋나고 균열과 빈 공간이 생기면서 땅이 주저앉아 생긴다. 주로 석회암 지역에서 발견된다. 석회암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녹으며 지하 공동을 만들고, 압력을 견디지 못한 땅이 붕괴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 대부분이 단단한 화강암층과 편마암층으로 이뤄져 비교적 싱크홀에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난개발 영향으로 전국 곳곳에서 도심지 싱크홀 사건이 발생,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대구시 동구 괴전동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안심비축기지 인근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지름 10m, 깊이 7m 규모 싱크홀이 발생했다. 인명 피해, 차량 파손은 없었으나 일대 가로등이 파손됐다. 상수도관 파열로 인근 290여 가구에 단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잇따른 집중 호우와 지하철 공사에 따른 지하수 유출 가능성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위탁 받아 지하공간통합지도를 제작하고 있다. 노후 지하시설물과 지하공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을 마련, 싱크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취지다. 국회에서는 싱크홀 조사 과정과 절차를 완화, 국민 안전을 강화하는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개정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도심 지반 침하는 언제든 영화 싱크홀과 같은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지하안전관리 관련 제도 정비를 통해 싱크홀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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