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등장한 작가가 있다. 지난 2019년 미술계에 얼굴을 내보이자마자 추상화, 자화상 등 그림과 조각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2020년에 열린 첫 전시회의 수익은 11억1600만원에 이른다. 그는 최초 인공지능(AI) 화가 아이다(Ai-da)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부정적 의미(영어로 NO)로도 쓰이는 그의 이름은 영국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딸이며 최초의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알려진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에서 따왔다. 올해 전시회에선 자화상을 그리는 장면까지 공개했다. 아이다의 눈은 카메라 기능을 작동시켜서 거울 속 자신의 얼굴 이미지를 손쉽게 복제했다.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팔에 달린 연필로 능숙하게 얼굴을 그렸다. 관객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작품 제작 기간을 묻는 관객에게 45분 내지 1시간15분이 걸린다고 대답했다.
AI 화가 아이다는 자기가 그린 그림에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저작권법은 사람만이 창작하고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2011년 인도네시아에서 원숭이 나루토가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의 카메라를 빼앗아 자기 모습을 촬영했다. 나루토가 저작권자가 될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원숭이가 저작권자가 될 순 없다고 판결했다. 사람이 아닌 화가 아이다도 마찬가지다. 아이다가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누가 저작권의 주인일까. 아이다 대신 누가 전시회 수익을 챙겼을까.
AI 화가가 작품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수집·배열·결합, AI 알고리즘 투입과 분석 등 주요 과정을 지배하는 사람에게 저작권을 줄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창작의 고통이 반드시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기술·기기나 타인을 이용해서 창작할 수 있다. 사진은 카메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창작품으로 인정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사진에 의한 창작품 인정에 장애가 없다. 촬영 대상 선정과 배치, 촬영 시간 결정, 카메라 렌즈 노출 정도, 사진 인화 방식 등 작가의 창작 행위를 인정한 것이다. 백남준은 '다양한 영상이 송출되는 TV 모니터'를 여러 형태로 쌓아 올리는 작품으로 비디오아트 영역을 개척했다. 가수로 알려진 화가 조영남은 화투를 소재로 아이디어를 내고 화가를 고용해서 그림을 그렸다가 사기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조수를 이용한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한다면 그 방식이 적합한지, 미술계 관행인지는 법률로 판단할 사항이 아니라며 무죄를 확정했다.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은 배우들의 몸에 물감을 묻히고 도화지 위에서 굴러다니게 한 뒤 그 자국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 배우들을 작가로 보는 사람은 없다.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등 많은 화가가 조수를 두고 작업하고 있다. 그렇다면 AI 화가를 통해 그림을 그리게 한 자가 데이터 수집·배열·결합, 알고리즘 설계·작동을 주도했다면 작품을 만드는 행위인 창작으로 인정해야 한다. AI 화가 아이다가 그린 그림은 그를 만들고 작동시킨 기업 엔지니어드 아츠(Engineered Arts) 등에 저작권이 돌아갔다.
AI 창작을 격려해야 할까. 그렇다. 창작의 다양성과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붓 놀리는 솜씨가 좋지 않아도, 물감을 선택하는 안목이 없어도 창작 기회를 잡아 훌륭한 미술가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걱정거리는 없을까. 있다. AI 화가 아이다를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는 자연인 화가가 많다. 배고픔에서 명작이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붓 하나, 물감 하나가 돈이다. AI 같은 디지털기기까지 쓰려면 돈은 갑절로 든다. AI 화가가 수많은 그림을 쏟아낼수록 그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멀어진다. AI 기업에 저작권이 몰리고 독과점이 형성되면 자연인 화가나 일반인의 창작 기회를 막을 수 있다. 누구나 저렴하게 AI 시스템을 빌려서 창작에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여기에 나랏돈을 쓰자. 대기업에 자본 찬스가 있다면 우리에겐 정부 찬스가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