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 자동차 부품사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주력 생산 거점을 속속 옮기고 있다. 수년째 지속된 부품단가 동결과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적자 경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연구개발(R&D)은커녕 생산 거점마저 해외로 이전하면서 국내 자동차부품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현대차·기아 2차 부품 협력사인 중소기업 A사는 생산본부를 국내 공장과 함께 운영하던 태국 공장으로 이전했다. 인건비를 비롯한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국내 생산 비중은 80%에서 내년까지 절반 이하로 줄이고, 이를 태국에서 소화한다. A사 관계자는 25일 “납품 단가는 수년째 변동이 없는데 해마다 오르는 임금 상승률을 당해 낼 수 없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자금난 등 경영 상황이 악화, 주력 생산 거점을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1987년에 설립된 A사는 30년 이상 국내 주요 1차 협력사인 대기업과 거래하고 있다. 2018년 600억원대 매출은 2019년 470억원, 지난해 400억원까지 줄었다. 과거 2%대이던 영업이익마저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18억원에 이른다.
중소 부품사 B사 역시 올해 베트남으로 주력 공장을 옮겼다. 국내 보조 생산 거점이던 해외 공장을 주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동남아 생산 물량을 늘리는 한편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다. B사 매출은 2019년 930억원에서 지난해 740억원으로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흑자 14억원(2019년)에서 적자 55억원(2020년)으로 전환됐다.
배경은 인건비 상승이다. 납품 단가 동결에 인건비 비중이 높아지면서 매출 원가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B사 매출 원가율은 2019년 90.1%에서 지난해 98.2%까지 치솟았다. 사실상 수익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다. 최저임금 상승은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했다. 최저 월급(209시간 기준)은 2017년 135만2230원에서 4년 만인 올해 182만2480만원으로 34.7% 증가했다. 반면에 A사가 둥지를 튼 태국 현지 공장의 생산직 월급은 국내 3분의 1 수준인 60만원이다.
또 다른 이유는 공급 거래처의 다변화다. B사는 국내 1차 협력사 외에 토요타나 덴소 등 동남아에 진출한 일본 업체에 직접 납품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 인도네시아 신공장 설립 등 국내 완성차의 동남아 진출로 현지 물량 확대 공산도 커졌다.
기업 규모에 따른 양극화는 고질적인 문제다. 완성차 실적 상승에 따른 수혜를 일부 완성차 부품 계열사나 1차 협력사인 대기업이 독식하는 구조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기업 110개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9년 3.8%에서 지난해 2.8%로 1.0%포인트(P) 하락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에서 1.3%까지 떨어졌다. 대기업 점유율은 3분의 2를 차지하며 인력과 R&D 투자, 성장성 면에서 대기업 독식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이항구 자동차연 연구위원은 “정부와 업계 협력 아래 중소 부품사를 위한 인력 재교육, 전문인력 양성,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관련 하부 구조를 구축, 새 수출 전략 품목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