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연료비 연동제와 기후환경요금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원가연계형 전기요금 체계가 시행됐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많은 전문가가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것들이기에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자체만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연료비는 총괄 원가 가운데 약 40%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없고, 외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선진국은 유틸리티(Utility·전력사업을 운영하는 회사) 재무성과가 연료비 변동으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지 않도록 연료비(혹은 전력구입비) 연동제를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료비 변동에 따른 위험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낮은 연료비에 따른 우발적 이윤을 사업자가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또 주기적으로 실적연료비를 반영, 전기요금이 자동 조정되는 구조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 전기요금 변화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아직 한 돌도 지나지 않은 연료비 연동제는 안타깝게도 처음 기대와 달리 우리에게 우려만 잔뜩 주고 있다. 지난 1분기에는 코로나19 이후 낮아진 유가를 반영해 연료비 조정요금을 -3원으로 적용했다. 그 이후 2분기와 3분기에는 연료비 상승 요인을 반영해 다시 0원으로 조정해야 했음에도 그렇지 못했다. 연료비 연동제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자 정부는 올 4분기에 연료비 연동제를 정상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선 정국이 다가오고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해지면서 4분기 연료비 조정요금이 발표될 다음 달에 연동제가 제대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것보다 전기요금의 전체 수준 자체를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전력공사는 올해 2분기에 7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고 2019년 4분기 이후 6분기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 한 해 한전의 영업실적은 2년 만에 다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원가회수율은 90% 초반에 머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3원을 올리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매년 총괄 원가를 반영해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2013년 11월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전기요금은 단 한 번도 조정된 적이 없었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다 보니 올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든다.
소비자 반발을 우려해서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것은 우리 국민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지금 내지 않는 그 돈은 결국 이자와 함께 언젠가는 다시 청구될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단돈 몇 천원으로 생색내려 하기보다는 정공법을 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기후위기 대응에 따라 우리 전력 산업이 앞으로 돈을 써야 할 일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온실가스도 줄여야 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분산형 전원도 많이 증가한다고 하니 계통 보강을 위해서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돈 쓸 곳은 많은데 돈 들어올 곳이 안 보인다. 주저하다간 탄소중립이 문제가 아니라 전력 산업이 근본적으로 흔들릴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 yeonjei@kee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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