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여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 논란에 침묵하고 있다. '침묵도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 발언을 빌리면,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0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언론중재법이 8월에 통과돼야 한다는 원내대표단 기본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야당과 언론단체, 외신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민주당의 이 같은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반발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외신과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1인 미디어 등을 제외하고 국내 언론만을 대상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폐기를 주장하며 “(민주당의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7개단체와 대한변협, 민변 등 법학교수회 등 전문가도 “언론자유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국제기자연맹과 세계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박용진 의원을 비롯해 조응천 의원, 이상민 의원 등 여당 내에서도 사회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 약화, 국민 알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같은 논란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언론중재법은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라고 밝혔다. 국회가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송영길 민주당 대표를 만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는 보도에 대해선 “(정무수석이) 송영길 대표를 만난 것은 사실이나 언론중재법 관련 얘기를 나눈 바는 없다”고 했다. 언론중재법 논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청와대가 민감한 현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추진, 김경수 전 경남지사 대법원 판결에 따른 구속, 청주 간첩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언론중재법이 여야 합의를 거치거나 논의가 이뤄진 뒤 처리되는 수순이라면 청와대 말이 맞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언론중재법 처리 과정은 민주당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고, 대통령 또한 민주당 소속이다. 청와대와 대통령이 침묵하면서 삼권분립을 운운하는 것은 민감한 현안을 회피하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 출범부터 인권과 언론자유 등을 강조하던 정부가 맞느냐는 물음이다.
이런 가운데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 발언이 회자되고 있다. 청와대가 언론중재법에 대해 '입장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낸 것과 달리 침묵도 메시지라는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이철희 정무수석은 지난 24일 SBS 디지털 오리지널 '이슈블라'에 출연해 김경수 전 경남지사 유죄 판결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는 지적에 “침묵도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난 2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청와대 측 침묵이 묵시적 동의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에 “자유롭게 해석하라”고 답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