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출한 2022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은 2021년도보다 8.8% 증가한 29조8000억원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10년 동안 해당 예산을 연평균 5% 이상 꾸준히 증가시켜 전체 R&D 예산 규모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R&D 투자 대국으로 성장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율은 국방 R&D 지출이 매우 높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다. 우리나라는 R&D만큼은 도전적이고 투자지향적 나라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는 끊임없는 R&D를 통해 새로운 상품과 기술을 만들어 내야만 발전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지속적 R&D 투자 확대는 논쟁도 유발했다. '과연 R&D 투자가 적절한 성과를 내고 있는가'이다. 국가 전체로 보면 기업 R&D 비중이 약 75%이고,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기업의 세계적 경쟁력을 보면 투자 성과는 분명해 보인다. 또한 현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정보기술(IT), 바이오산업이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로 성장해 왔다는 사실에서 정부의 R&D 투자 성과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국가 R&D 투자의 성과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그 근거 가운데 하나가 논문의 수량이다. 투자는 세계 5위이지만 생산되는 논문의 수는 왜 세계 11위권에 그치는가 하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가별로 산출되는 논문의 총수를 각 정부의 R&D 투자액으로 나누면 R&D 투자 상위 5국이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논문으로 우리나라 R&D 투자의 생산성이 낮다는 정황은 딱히 찾아볼 수 없다는 의미다.
오히려 얼마나 좋은 논문을 생산하는가를 나타내는 논문피인용지수를 보면 세계 32위에 그치고 있어 논문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정부 R&D 투자 규모 순위가 우리나라보다 낮은 프랑스(6위), 영국(7위), 이탈리아(8위), 캐나다(9위) 등 국가가 논문 수와 피인용지수에서는 우리보다 앞선 10위권 내에 포진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이들 나라의 정부 R&D 투자액 대비 논문 편수와 피인용회수는 우리나라의 두 배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적은 비용으로 우수한 논문을 다수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유는 자명하다. 이들 나라의 R&D 투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과 기업이 아니라 대학에 훨씬 더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논문의 77%를 대학이 생산하고 있고 기초연구 분야에서 76.4%의 논문이 나온다는 점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우수한 논문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기초연구 분야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나라 전체 R&D 투자 가운데 대학이 사용하는 금액은 9조5000억원 규모다. 영국(14조8000억원), 캐나다(14조1000억원)보다 현저히 적고 이탈리아(9조8000억원)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정부 R&D 투자 가운데 대학으로 투입되는 비율은 31%로, 논문 효율성이 높은 캐나다(69%)·영국(55%)·이탈리아(59%)와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들 나라의 전체 R&D 투자 규모가 우리보다 작다는 점을 감안하면 R&D 투자에서 대학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주요 과학 선진국 대학의 기초연구 비율은 50% 이상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기초·개발·응용 연구가 비슷한 비율로 수행되고 있어 논문의 수와 질 수준 향상에 한계가 있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의 역할 분담이 더욱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대학은 기초연구에 더 집중해야 한다.
논문만으로 정부 R&D 투자 효과를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잘못된 논문 관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정부 R&D 투자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찾고 개선하는 노력 또한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정책에서 기인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과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및 역량이 부족하고, 이것이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국제적 평가에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의 기초연구 투자 확대 정책이 중요하지만 대학의 연구 경쟁력과 연구 수월성을 확보하는 획기적 정책 또한 시급하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yeom@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