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는 태풍을 예측한다고 한다. 중국 명나라 약학서 본초강목에 “까치는 바람을 예측하는데 많은 바람이 예상되면 낮은 곳에 집을 짓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까치의 행동에서 태풍의 전조(前兆)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바일 혁명 시대에도 이러한 전조는 있었다. 돌이켜보면 2007년이 그러한 해였다. 그해 애플의 아이폰이라는 기기와 운용체계(OS) iOS, 앱스토어라는 거래 플랫폼이 등장했다. 구글의 OS 안드로이드도 발표됐고, 거래 플랫폼 안드로이드 마켓의 출시도 이어졌다. 태풍은 몰아쳤고, 이를 찻잔 속 태풍이라 생각한 노키아는 사라졌다.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고, 시장은 재편됐다.
이제 모바일 혁명을 넘어서는 태풍이 오고 있다. 바로 메타버스다. 메타버스 혁명의 전조는 무엇일까. 2020년 10월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옴니버스(Omniverse)라는 플랫폼을 발표하며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Metaverse is coming)고 언급했다. 옴니버스는 현실의 물리법칙을 그대로 가상공간에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BMW는 세계의 모든 공장을 옴니버스로 가상화하고 있다. 목표는 생산성을 30% 높이는 것이다.
2020년 9월 페이스북은 가상현실(VR) 경험을 지원하는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2를 출시했고, 2021년 상반기까지 450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애플 아이폰의 확산을 연상케 하는 속도다. 뒤를 이어 페이스북은 2021년 7월 “5년 안에 메타버스 기업으로 변신할 것”이라 선언하고 8월 메타버스에서 일할 수 있는 공간 '호라이즌 워크룸'(Horizon workrooms)을 발표했다.
MS도 올해 3월 전 산업 분야에서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 메시를 발표했고, 4월 미국 국방부와 25조원 규모의 홀로렌즈2 공급계약을 맺으며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MS와 미국 정부는 과거 인터넷 혁명이 군에서 알파넷으로 시작됐고, 이후 세상을 변화시킨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미국 국방부와 MS가 만든 메타버스 혁신은 다시 민간으로 유입돼 큰 파급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지난 7월 구글의 웨이모는 가상환경에서 자율주행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시티를 선보였다. 빗방울에 반사되는 햇살까지 구현되는 가상환경에서 자율주행차는 하루 3200만㎞를 주행하며 4만여가지 교통 상황을 훈련할 수 있다. 현실에서 수집하는 데 5년이 걸리는 데이터가 메타버스에서는 하루 만에 모인다.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고 있다. 메타버스 태풍의 전조가 느껴지는 변화다.
까치는 태풍을 감지하고 낮은 곳에 집을 짓는다. 더 중요한 것은 까치가 집을 허술하게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을 하나 짓는 데 물어오는 나뭇가지가 1000개가 넘고 바람과 비를 막기 위해 둥지 안에 진흙, 다른 동물의 털, 나무뿌리 등을 촘촘히 바른다고 한다. 진심으로 태풍을 준비하고 집을 짓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은 진심으로 메타버스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메타버스에 진심인가?' 자문할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 혁명을 이끌 글로벌 플랫폼과 기기가 속속 등장하며 시장을 열고 있지만 제페토가 선전하고 있음을 제외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플랫폼과 기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보여주기식으로 메타버스 행사와 회의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지나가는 바람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경쟁력 있는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상융합(XR),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 등 핵심기술이 복합 적용돼야 한다. 혼자의 힘으로 어렵다면 협력을 통해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구성된 메타버스 얼라이언스를 활용하는 것도 방안이다.
새로운 태풍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메타버스 기업과 정부가 협력을 통해 태풍을 이겨낼 튼튼한 플랫폼과 생태계를 만들고 메타버스 시대를 주도하길 기원한다.
이승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박사 seunghwan.lee@spr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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