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는 가상세계를 다뤄본 경험이 풍부하다. 콘텐츠와 커뮤니티의 유기적인 결합을 구현해 메타버스를 가장 잘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메타버스 시초격으로 '세컨드라이프'를 들 수 있다. 2000년대에 유행한 세컨드라이프는 가상세계를 그렸다.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는 게임 내 사이버머니도 제공했고 가상세계에서 개인적인 관계도 맺을 수 있다. '마야' 같은 디자인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제작했다. 취향과 기호에 맞게 아바타를 치장했다. 제작한 가구나 의상은 돈을 받고 팔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사업까지 등장했다.
IBM 같은 기업이나 정당도 세컨드라이프를 활용했다. 국내에서는 민간외교사절단과 사이버 독도를 개설하고 원불교가 진출하기도 했다. 세컨드라이프 내 독도에서는 한·일 이용자간 전쟁이 게임처럼 끊이지 않았다. 만남, 여행, 사업 등 현실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행위를 자유롭게 가상 공간에서 할 수 있었다. 자유도가 높다 보니 성 문제, 사기 등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병폐가 나타나기도 했다.
최근 메타버스 대장이라고 불리는 로블록스 역시 근간은 게임이다. 게임 내 암호화폐 '로벅스'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메타버스는 좁은 의미로 샌드박스형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과 유사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MMORPG 개발과 운영 노하우를 가진 국내 게임사가 경쟁력을 가진 이유다.
펄어비스는 신작 '도깨비'에 메타버스 용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고품질 메타버스 게임을 표방한다. 정경인 펄어비스 대표는 “도깨비는 기존 게임과 다른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며 “메타버스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속할 하나의 트렌드”라고 밝혔다.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세를 불리고 있는 컴투스도 메타버스 관련 기업 투자에 나섰다. 컴퓨터그래픽, 시각 특수효과 기술력을 갖춘 콘텐츠 제작사 위즈윅스튜디오에 450억원을 투자했다.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 제작에 참여한 위지윅은 메타버스 분야로 확장을 선언한 기업이다. 양사는 콘텐츠와 기술 등 다방면에서 시너지를 기대한다.
한빛소프트는 자사 대표 지식재산권(IP) '오디션'의 자원과 커뮤니티 기능을 메타버스 생태계로 구성하는 '오디션 라이프'를 개발한다. 메타버스 생태계 안에서 이용자들이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직업과 기술을 갖는다. 의상, 건물, 오브젝트 등을 제작해 거래해 재화를 버는 메타버스 경제활동도 할 수 있다. 한빛소프트는 내년 상반기 중 비공개 테스트(CBT)를 목표로 한다.
IMC게임즈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와 메타버스 플랫폼, 솔루션을 개발한다. 김학규 대표가 이끄는 IMC게임즈는 그라나도 에스파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로 성공적인 가상세계를 구현한 경험이 있다.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는 “메타버스 반은 사실상 게임이고, 반은 커뮤니티라고 본다”며 “메타버스를 구현해도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않으면 어렵다”고 설명했다.
'탈리온' '쉐도우블러드'로 개발력을 인정받은 유티플러스는 메타버스 플랫폼 전문기업으로 전환했다.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전인 3년 전부터 메타버스 플랫폼 '디토랜드'를 개발했다. 올해 제한적으로 선보였다. 이용자가 전문지식 없어도 자유롭게 콘텐츠를 생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이용자 제작 콘텐츠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올해 인디크래프트 가상게임쇼를 디토랜드에서 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위메이드는 메타버스를 지탱하는 가상자산을 대규모 게임에 적용하는 실험을 한다. 메타버스 두 축인 가상세계와 경제활동을 게임 콘텐츠 측면에서 접근한다. '미르4' 글로벌 버전에 유틸리티 코인 드레이코를 적용한다. 게임을 즐기면서 획득하는 재화를 가상자산으로 전환하는 개념이다. 게임 내 거래소 거래에서 나아가 실제 경제 경계를 넘나드는 경제 시스템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가진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위메이드 미래는 메타버스와 가상자산”이라며 “암호화폐 거래소가 향후 전개될 가상자산 경제와 메타버스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 넵튠은 VR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사 맘모식스를 인수했고 와이제이엠게임즈는 메타버스 전문회사 원유니버스를 설립했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는 메타버스 VR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한다.
국내 대표 게임기업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은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관련 게임 게임을 제작하거나 기술을 보유해 대응한다.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수준인 만큼 당장 수익보다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는 단계다.
넥슨은 '페이스플레이'를 개발 중이다. 페이스플레이는 인공지능(AI)으로 이용자 얼굴을 인식해 아바타를 만들어 다른 이용자와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실사를 토대로 한 아바타가 구현되는 만큼 메타버스 확장성이 충분하다.
메이플스토리 에셋을 활용해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공유하는 콘텐츠 메이킹 플랫폼 '프로젝트 MOD'는 로블록스와 유사하다.
엔씨소프트는 K-팝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유니버스'에서 가능성을 타진한다. 유니버스 세계에서 AI가 학습해 만든 스타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거나 전화통화를 한다. 가수 본인이 모션캡쳐로 만든 아바타를 팬이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들을 출연시켜 자신만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수 있다. 콘서트와 팬사인회 등이 유니버스 세계에서 개최된다.
넷마블 자회사 넷마블F&C는 메타아이돌, 메타월드 상표 특허를 신청하고 메타버스 관련 기획자를 채용하고 있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메타버스 게임 개발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