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대학 입시 수시 모집이 시작됐다. 수험생은 물론 자녀를 둔 부모까지도 대학 진학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그 어떤 전쟁보다 치열하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른다. '소프트웨어(SW)만 잘해도 명문대학을 갈 수 있다.' 2016년부터 선정된 SW중심대학이 SW특기자 전형 제도를 도입하면서 내건 말이다. 당시 고려대, 성균관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SW중심대학은 SW 특기만을 보고 학생을 선발하는 SW특기자 제도를 도입했다. 수학능력평가(수능) 최저 기준도 없앴다.
마치 음악·미술·체육 특기생처럼 정말로 다른 과목은 성적이 좋지 않아도 SW 특기만 있으면 대학에 가는 것이다. SW특기자 전형을 도입한 것은 이것저것 모든 것을 평범하게 하는 인재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처럼 SW 분야의 특별난 인재를 양성하자는 취지다.
알다시피 게이츠와 잡스는 대학을 중퇴했고, 이후 거대한 SW 기업을 일궈 냈다. SW중심대학의 SW특기자 전형 도입 당시 언론에는 '한국형 빌 게이츠를 육성한다'라는 기사 제목이 달려 있었다.
SW특기자 전형은 이제 많이 축소됐다. SW특기자 전형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한 가지는 SW 특기만을 평가해 선발한다. 또 다른 하나는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을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교내 행사 외 내용은 기록할 수 없다. 학생의 SW 특기를 전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실질적 SW특기자 선발은 SW 특기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SW중심대학이 10여개에 불과하던 시절인 2018학년도 SW 특기 전형은 고려대, 서강대 등 9개 대학에서 모두 203명을 선발했다. SW중심대학이 41개로 늘어난 2022학년도 현재 SW 특기 전형은 KAIST, 숭실대, 국민대, 한양대, 경희대 등 5개 대학만 실시한다. 선발인원도 89명으로 2018학년도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왜 대학이 SW 특기로 선발하는 전형을 축소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2019년 이후 교육 공정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이후 정책담당자는 물론 대학에서도 SW특기자라는 말을 부담스러워했다. 이후 정부가 수시 비율을 줄이고 정시 확대 정책을 발표하면서 많은 SW중심대학이 SW특기 전형을 학종으로 전환했다.
교육 평등과 공정성, 매우 중요한 이슈다. 꼭 지켜져야 할 명제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상황'을 만들 수는 없다. 잘못된 부분은 분명 도려내고 개선해야 되지만 수시 제도를 마련하고 SW특기자 전형을 제정한 취지도 생각해야 한다.
과거 학력고사 시절처럼 모두 동일하게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과목을 평가한 성적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시스템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 대학교육은 학생별로 장점을 발굴해서 더욱 잘할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고 두각을 드러내 보였다면 다른 공부는 좀 잘하지 못하더라도 그 학생을 선발해서 그 분야의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 이 사회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가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동일한 평가 잣대를 적용해서 선발·육성해서는 안 된다.
1% 수재로 이뤄진 우리나라 의료계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병원을 비롯한 우리나라 의료계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의료서비스 수출도 극히 일부다. 모든 산업이 SW 기반으로 이뤄진다. 세계적 SW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디테일'이다. 무조건 문제가 있다고 정책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게 아니라 개선해야 한다. SW특기자 전형의 취지를 살려서 유지 또는 확대하며 공정한 선발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사교육 우려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공공기관, 대학이 노력해서 공공 기능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 사교육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우리는 국어·영어·수학은 잘하지 못하지만 음악만으로 음대에 입학해 세계적 음악가가 된 사례를 적지 않게 봤다. 이제 SW 분야에서도 SW 특기만으로 대학에 입학해서 세계적 SW 전문가가 되는 사례를 봐야 한다. SW 천재가 국어·영어·사회는 잘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