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반도체 산업과 달리 수십년째 초라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적지 않은 투자를 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는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문제는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하드웨어(HW) 측면에서 순수 파운드리 인프라 확보가 관건이다. 소프트웨어(SW) 측면에서 보면 설계 자산의 공유와 거래 활성화를 이루는 것이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시스템반도체 관련 기업과 인력에 대한 전폭 지원을 꼽을 수 있다.
순수 파운드리 인프라 확보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성장시키는 주춧돌을 놓는 것이다. 파운드리 산업은 최첨단 제조업이기 때문에 국가 제조업 경쟁력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파운드리 팹은 스포츠에서 운동장과 같다. 좋은 운동장에서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올 수 있지만 지금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그러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한국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서 순수 파운드리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내에 접근이 용이한 12인치 순수 파운드리 팹이 거의 없으며, 그나마 8인치 팹도 해외로 거점을 옮기거나 국내 투자가 오랫동안 정체돼 왔다. 세계적으로 시스템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파운드리 생산능력 부족은 한국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시스템반도체 세계 시장을 놓고 글로벌 선진 국가들이 국가 전략산업으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 아쉬운 현실이다.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투자가 순수 파운드리 인프라 확보에 이뤄져야 할 이유다.
둘째 시스템반도체 산업에도 이제는 '공유경제' 개념이 적극 도입돼야 한다.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지극히 폐쇄적이다. 특히 팹리스는 더욱 그러했다. 기술보안이라는 명분 아래 설계자산(IP) 공유나 거래가 활성화하지 못했다. 국내 팹리스는 개발하고자 하는 IP를 모두 자체 개발해서 확보하자고 한 것도 그런 이유다.
당연히 한국에는 설계IP 개발 전문기업이 드물고, 산업 취약성이 더욱 가중된 구조에서 우리 팹리스들은 글로벌 시장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치 못해 대부분 시장에서 퇴출돼 미국·대만의 글로벌 팹리스와 같은 성공스토리가 전무한 게 현실이다.
이제는 전향적인 시스템반도체 설계IP에 대한 공유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시스템반도체 개발 기업들이 핵심 설계IP 연구개발(R&D)에만 집중해서 외부의 검증된 설계IP들을 상호 공유하고 적극 채용해야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최소한 국가 R&D 설계IP만이라도 데이터베이스(DB)화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공유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각 기업의 보유IP 거래 활성화와 실시간 기술지원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민간기업 주도의 IP 거래 인프라 구축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셋째 시스템반도체 개발 관련 기업에 종사하는 R&D 인력에 대한 정부 차원의 다양한 인센티브 지원 파격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 R&D 인력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안정적으로 자기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 구축에 정부가 집중 투자하는 것은 고용 창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시스템반도체가 새롭게 개발되고 시장을 개척해서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기업 연속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업력 10년 이상의 중견 시스템반도체 기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원도 적극 고려돼야 한다. 정부의 주요 정책이 업력 7년 미만의 초기 창업기업에 집중되는 것은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이에 대한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스템반도체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정부의 실효 정책과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시스템반도체의 기나긴 저성장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정원 세미솔루션 대표 j.lee@semisolu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