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새 사업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당국 눈치보기'입니다. 임직원이 신선한 아이디어를 많이 냅니다. 그런데 은행이다 보니 금융당국 규제로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은행은 수익성이 나빠도 금융 접근성 때문에 점포를 함부로 줄일 수 없습니다. 채용 확대라는 사회 역할도 해야 합니다. 결국 비효율은 유지하면서 빅테크 혁신성과 맞경쟁해야 하는 구조를 깨기가 어렵습니다.”
얼마 전 만난 은행권 관계자가 털어놓은 고충이다. 점포 축소나 채용 확대는 금융기업의 사회 의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전통 금융사 역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생 정보기술(IT) 기업의 혁신성까지 모두 갖추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근원적 의문을 던지는 고충이었다. 조직부터 시스템까지 최소한으로 최대 효율을 노리는 한편 빠른 변화를 추구해 온 빅테크와 경쟁하려면 지금 금융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빅테크와의 경쟁 환경이 불공평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빅테크가 사실상 유사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은행과 동일한 규제는 받지 않는 점이 주된 문제로 지적되며 '동일 기능, 동일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사는 혁신 신사업에 마음껏 진출할 수 없지만 빅테크는 여러 사업 가운데 하나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다양한 분야와 시너지를 내고 있는 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빅테크가 '원 오브 뎀'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존 금융사를 위협하는 수준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이미 금융시장을 크게 흔든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 형평성 문제를 간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금융권은 기존 규제정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산업이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비금융 영역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는 금융권뿐만 아니라 핀테크·빅테크 업권에서도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동일 기능'에 따라 규제할지 기업 성격에 따라 규제할지 등 시장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규제와 혁신 창구 마련 방안 논의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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