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고대·한양대 등 주요 대학 총장들이 이공계 신입생의 기초학력에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수학·과학 수준 저하 심각성을 공감하고 특단의 대책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산업계도 공대 졸업자들의 깊이가 얕아지는 현실을 꼬집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융·복합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대학과 산업계 대표들은 가장 먼저 기초가 흔들리는 현상을 지적했다. 대학 입시에서는 고등학생들의 과학 심화과목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 대학들이 저마다 기준을 완화하면서 서울대마저 2024학년도 입학전형에서는 과학탐구Ⅱ(2)필수 폐지를 예고했다.
이에 서울대·고려대·한양대 총장과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이 공학교육학회에서 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입시에서 과학2를 필수화할 것)을 대부분 총장들에게 제안하고 동의를 했지만 막상 입학본부장들은 지원자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려운 조건까지 내걸기가 어렵다고 했다”며 “총장들이 다시 만나 논의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서울대도 과탐2를 폐지하게 되면 수능에서 과탐2를 보는 학생은 거의 없어질 것이고 사실상 고등학교 과학 수준은 과탐1에서 끝난다고 봐야 한다. 수학도 수준이 점점 내려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에서 물리2를 지원한 학생은 응시자의 0.8%인 3293명, 화학2를 지원한 학생은 0.9%인 3474명에 그쳤다. 서울대는 2024학년도 입학전형에서 수능 과탐2 필수는 폐지했지만, 학과 별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은 지정할 계획이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선택권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면 쉬운 쪽만 지향하게 되는데 이대로는 물리2나 화학2 전멸상태가 될 것 같다”며 “대학과 산업계가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물리학도 듣지 않고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며 “과학2 의무화를 동의는 하는데 선발이 어려워 합의를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기계공학은 물리의 법칙을 이용해 기계를 연구하고 설계하는 학문이다. 기계공학과 지원자마저 물리2를 듣지 않고 수능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진로를 선택하려면 수학을 어느 정도 잘해야 하고 과학도 얼마만큼 공부해야 하는지 인식이 부족하다”며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경험할 수 있는 교육체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공학 교육 자체의 혁신을 위해서는 대학을 넘어서는 연결과 협력이 강조됐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IC-PBL(Industry-Coupled Problem-Based Learning)사례를 소개했다. IC-PBL은 대학·산업계·지역사회가 연계해 학습자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수업형태다. 한양대는 16주 과정으로 40명 이내 전공과목에 한해, 이공계 뿐아니라 인문사회와 정치외교 분야까지도 IC-PBL을 하고 있다. 기업체나 기관이 문제를 주고 평가도 외부 전문가들이 한다.
윤석진 KIST 원장은 “대학 연구와 인재양성에 기여하기 위해 서울 소재 대학들과 공동 연구를 특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고 한다”며 “대학원생 뿐만 아니라 교수도 참여하는 개방형 연구를 시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연 평가 시스템 혁신을 위해 정량 평가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며 “올해부터는 논문이나 특허 숫자가 아니라 수월성으로만 평가하고 전 연구영역에 인공지능(AI) 필수화를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허세홍 GS 칼텍스 사장은 “대학 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학생 수준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높다”며 “복수전공 등으로 지식 폭은 넓어지는데 깊이가 부족해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기적으로 조사나 평가를 통해 인력 수준을 진단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