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청자들 사이에서 유독 많이 회자되는 장면이 있다. 극중 머니게임 참가자들이 피 튀기는 살육전을 벌이자 한 등장인물이 “제발 그만해… 나 너무 무서워, 이러다간 다 죽어”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장면 자체는 다소 생뚱맞지만 배우의 명연기 덕분인지 정치, 경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누리꾼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는 요즘 투자한 코인 가격이 떨어지면 이 대사가 반드시 등장한다. 자학적인 측면도 있지만 다 같이 힘을 모아 시세를 끌어올리자는 취지의 밈(Meme)이다. 과거 유행했던 '가즈아'나 '영차'의 진화된 형태인 셈이다.
투자자들과 달리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단합 독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업계에는 가상자산 과세, 트래블 룰 시스템 구축, 실명계좌 추가 발급 촉구, 업권법 통과 등 현안이 무수히 쌓여 있지만 통일된 의견이 수립되는 일은 거의 없다. 화력이 집중되지 않으니 무엇 하나 시원하게 진전되는 일도 없다. 원화 거래가 가능한 4개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와 나머지 코인마켓 거래소 간 이해 상충 문제도 있지만 중재자 역할을 해 줄 협회의 존재감이 희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 그룹 모두 협회의 방향성에 불만만 쌓이고 있다. 중소 거래소는 “협회가 협회비를 많이 내는 대형 거래소 입장만 대변한다”고 지적하고, 대형 거래소는 “협회가 우리 현안을 다뤄 주지 않아 행사에 참여할 이유를 못 느낀다”고 비판한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협회 숫자가 계속 늘고 난립하는 상황도 이와 연관된 문제로 보기도 한다.
정작 협회와 회원사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도 의심스럽다. 최근 한 협회·단체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발언한 협회장의 주장과 뒤늦게 도착한 회원사의 입장이 상반돼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행사 직전까지도 발언 내용에 대한 의견 조율이 없었다는 의미다.
중소 가상자산거래소들은 코인마켓 전환 후 거래량이 기존 대비 90% 급감했다고 한다. 고사 위기에 놓였지만 여전히 정부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 내기도 어렵다. 이러다간 다 죽을 판으로 보이는데 총대를 메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협회가 존재감을 드러내길 바란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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