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마블의 한 시기가 마무리된 것처럼 '007 노 타임 투 다이'로 007이라는 중요한 시리즈도 전환점을 맞게 됐다. 글로벌 대표 유통 플랫폼이자 오래전부터 미디어 영역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아마존이 올해 007시리즈를 보유한 MGM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전쟁이 시작된 지는 오래됐지만 콘텐츠 수급과 콘텐츠를 활용한 경쟁 양상은 치열해짐과 동시에 더욱 복잡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지난달 17일 공개한 '오징어게임'의 기세가 무섭다. 세계 이용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물론 미국·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문화적 할인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취라 할 수 있다. '오징어게임'이 거둔 성과가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미디어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오징어게임'의 성공을 그저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기술기업으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콘텐츠 수급에 항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사업자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우수한 콘텐츠 제작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투자 대상으로 제격이다. 창작자 입장에서도 넷플릭스는 큰 규모의 제작에 대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작 자율성을 인정해 주는 좋은 투자자라는 인식이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이후 몇 년 사이에 형성됐다.
문제는 넷플릭스가 한국에서의 제작 투자를 늘리면서 국내 사업자가 지식재산(IP)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지 않고서는 드라마를 제작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작비가 높아졌다. 제작비 상승에 넷플릭스가 영향을 미쳤고, 넷플릭스에 대한 제작비 의존도는 앞으로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짙다. 넷플릭스는 작품 IP를 자체 보유하고 제작비 대비 10% 이윤을 제작자에게 보장해 주는 계약 방식으로 한국에서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진출도 공식화됐다. 월트디즈니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한국 진출은 이제 아마존이나 HBO와 같은 사업자도 곧 한국에 진출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 입장에서는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진출을 글로벌 사업자의 한국 투자에 있는 장점을 살리면서 현재 한계를 극복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미디어 산업에서 또 다른 변곡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국내 콘텐츠 사업자의 교섭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국내 콘텐츠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국가다. 디즈니도 한국에서 꾸준히 플랫폼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한국 콘텐츠 투자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에서도 합리적 거래 기준에 대해 국내 사업자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거래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표준 설정을 위해 정부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징어게임' 제작비는 200억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국내에서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제작비인지도 따져 봐야 한다. 국내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 '모가디슈'의 제작비가 250억원 수준이다. 상당한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사업자가 온전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콘텐츠의 필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오징어게임' 성취가 넷플릭스라는 강력한 유통 창구가 가지고 있는 가입자와 마케팅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징어게임'이 거둔 성공의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플랫폼 영향력과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은 콘텐츠를 둘러싼 게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보여 주고 있다. '오징어게임' 성공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그 이면에 놓여 있는 한계도 함께 보는 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콘텐츠 게임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다.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nch0209@mf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