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상황을 경험하면서 세계는 비대면 디지털 경제로 급속히 이행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앱스토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디지털 생태계의 핵심인 플랫폼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은 명시적으로 사이버 주권을 강조하면서 자급자족 플랫폼 경제를 구축했다. 유럽연합(EU)은 플랫폼 기업 공백이라는 냉엄한 현실에서 온라인 주권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규제로 대응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을 진입 장벽이 낮고 독점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혁신적이고 경쟁적인 시장이라고 인식, 사후규제를 적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이들에 대한 규제적 대응을 강화하는 추세다.
특히 EU는 사후규제의 반독점 징벌이 미국에 비해 약하고 집단소송 제도가 덜 발전한 상황이어서 플랫폼에 사전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표적이 되면서 국정감사 등 정치권의 압박이나 플랫폼에 대한 규제 요구가 상당하다. 그런데 플랫폼의 역작용이나 플랫폼 규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큼에도 정작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나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연구 또는 보고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가 2018~2020년 3년간 국제전문학술지에 게재된 디지털 플랫폼 관련 사회과학 논문 703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EU 247편, 영국 95편, 미국 170편, 중국 93편을 각각 발표한 것에 비해 한국 논문은 16편에 그쳤다.
미국, EU는 국회나 정부가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회나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과 관련된 제대로 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이처럼 충분한 근거가 없는 가운데 자칫 단기적인 여론이나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섣부른 규제가 도입된다면 국내 디지털 플랫폼 및 관련 산업의 발전과 혁신성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성장해 미국·중국의 글로벌 플랫폼과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토종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 거의 유일한 나라이다.
아직 업력이 짧아서 이들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은 바로잡아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정책적으로 육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필요한 규제를 하는 역주행 행태를 보이는 것은 국익이나 사회적 후생에 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인정받아 왔다. 다가오는 미래에 IT 강국을 잇는 새로운 국가 비전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는 반도체나 휴대폰 등 기기를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라 콘텐츠와 문화를 세계시장에 공급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 플랫폼 강국이 새로운 국가 비전이 돼야 할 것이다.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헤게모니 다툼 속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 있는 자국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다는 것은 곧 백신을 보유하는 것과 유사한 의미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디지털 플랫폼 정책포럼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 보유국으로서의 국가 비전과 다양한 정책 방안을 보고서로 정리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고요한 물에 돌을 던져 작은 물결을 일으켜 낼 수는 있다”고 한 테레사 수녀의 말씀처럼 이 포럼에서 디지털 플랫폼 산업을 위한 파장을 일으키는 돌멩이가 무수히 던져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hiddentrees@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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