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산업기술 연구개발(R&D)은 단기 성과만을 위해 성공이 담보된 업그레이드 중심 기획과 수행을 해 왔다. 물론 '추격형'(Fast-Follower) R&D를 할 때는 참고서 격인 선진국 참조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방법이었다. 또한 성공 또는 실패로만 나누는 이분법적인 평가체계는 연구자의 도전성과 창의성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즉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진정한 '선도형'(First-Mover) R&D를 위한 지원체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주지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접어들고 있다. 많은 분야에서 세계 정상권에 올라 있고, 과거 우리가 한 것처럼 많은 나라로부터 추격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추격형 R&D만으로는 발전은커녕 현 위치 고수도 어려운 지경으로 몰리고 있다. 물론 도전적인 R&D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예상할 수 있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투자와 노력을 해야 하고, 실패할 경우의 불이익도 걱정된다. 어려운 기술 개발을 위한 테마 선정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극복해야 진정한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돼 새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일반 기업에서는 이와 같은 도전적인 R&D를 수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상당히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주요 선진국은 국가 주도 혁신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인터넷, 위성항법장치(GPS), 지능형 음성인식 등으로 현대 사회에 크게 기여한 미국 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연구 실패의 용인과 도전적 연구, 개방형 혁신을 강조하며 잠재적 기술이전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조한다. 2019년도 예산이 약 34억달러(약 3조9600억원)였으며, 주로 경쟁형 R&D를 수행했다. 일본의 '문샷'(Moon-Shot) 프로젝트는 10~20년 후 일본에 필요할 만한 기술을 주제로 선정해 인공동면, 우주 엘리베이터, 플라스틱 쓰레기 자원화 등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19년부터 연 1조원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FET 플래그십'(FET Flagship)을 통해 유럽의 사회 및 경제적 복지에 기여할 파괴적 혁신기술 개발에 7년 동안 10억유로(약 1조350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정부 R&D를 짚어 보자. 기초기술 분야 R&D는 기술공급자 중심 R&D 기획으로 말미암아 산업 목적성이 부족하고, 투자 효율성은 저조하다. 기초 R&D 성과지표라 할 수 있는 기술이전 효율성은 평균 1.5% 정도로 아주 낮았고, 기술 수출액은 세계무역기구(OECD) 평균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수준을 보였다. 산업기술 분야 R&D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주로 단기 시계 중심의 점진적 기술 로드맵 방식으로 추진하며, 도전적인 R&D를 기피해 온 것이 현실이다. 미래 신산업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고위험 분야에 대한 도전적 연구를 활성화해야 하고, 공급자 위주가 아니라 시장 수요가 적극 반영된 중장기 R&D가 필요한데도 자연히 과제 성공률이 90% 이상으로 과도하게 나타나는, 기뻐할 수만은 없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10~20년 후 산업시장을 예측하고 투자하는 중장기 R&D로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9년과 지난해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4월 예타를 통과했다. 오는 2022년에서 2031년까지 10년 동안 사업비를 4142억원 투자한다. 1단계 개념연구 시에는 1년, 2억원 안팎을 6개 연구기관에 지원한다. 이후 단계를 마치고 평가를 거쳐서 선정된 3개 연구기관에는 2단계 선행연구로 1년, 5억원 안팎을 지원한다.
이후 최종적으로 선정된 1개 연구기관에는 5년 이내, 연 40억원 안팎의 3단계 본연구를 지원하는 경쟁형 R&D다. 성공을 조건으로 하는 기존 R&D 틀을 벗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산업적 파급력을 띤 '도전적 기술 개발'(High Risk-High Return)을 통해 산업기술 전반에 걸쳐 고난도·도전적 R&D 사업 확산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규택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신산업 투자관리자(MD) 겸 알키미스트 MD gtlee@kei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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