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87>한 함정의 또 다른 함정

이것은 이미 증명된 하나 또는 둘 이상의 명제를 전제로 해서 새로운 명제를 결론으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이것의 한 형태가 대전제, 소전제, 결론으로 구성된 삼단논법이다. 여기서 대전제란 주장을 향한 논거나 근거다. 만일 대전제에 예외와 반증이 있다면 이 굳건해 보이는 과정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혁신에도 흔한 함정들이 있다. 생각의 함정도 흔하다. 그리고 하나의 함정은 대개 다른 함정으로 이끈다. 그래서 꾸불꾸불 이어진 구덩이 안을 한참이나 헤매기도 한다.

종종 하나의 원인 탓으로 치부되던 것에 문득 다른 원인이 있었음을 보기도 한다. 대개 실패는 단지 한 가지 원인으로 닥치지만은 않는다. 만일 그것뿐이었다면 그런 최고의 경영진과 막대한 자금을 손에 쥔 채 그리 쉽게 허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업사에는 그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이 있다. 코닥을 한번 떠올려 보자. 이 위대한 기업은 그 만큼이나 위대한 슬로건을 선사했다. 바로 '코닥 모먼트'(Kodak moment)였다. 우리는 즐겁거나 아련하거나 마음 찡한 순간들을 이것에 담아 기억했다. 코닥 모먼트란 이 순간들의 표제 같은 것이었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87>한 함정의 또 다른 함정

얼마나 대단했냐고 묻는다면 이것은 어떤가. “세상의 순간을 잡아 나눠 보세요.”(Capture and share the world's moment) 어딘지 비슷한 이 슬로건은 오늘날 누구나 추앙해 마지않는 인스타그램 것이다.

코닥이 새 기술의 희생양이라고 많이 기억한다. 그러나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는 코닥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Steve Sasson) 작이란 반증이 있다. 그럼 코닥이 정작 이 기술을 무시한 탓일까. 그러나 여기에도 반증이 있다. 세계 최초로 상용된 일안 반사 디지털 카메라는 코닥이 출시한 DCS 100이다. 심지어 DCS는 디지털카메라시스템(Digital Camera System)의 줄임말이다.

누군가는 코닥이 소셜 네트워크란 새로운 세상을 몰라서 그랬다고 치부한다. 그러나 이것에도 반증이 있다. 코닥은 2001년 오포토(Ofoto)라는 사진 공유 사이트를 인수했다. 이즈음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프로그램을 코딩하고 있었을 때였고, 인스타그램은 2010년에야 설립됐다. 이 얼마나 앞선 시각이었나. 그러니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의 잠재력을 몰랐다고 하는 건 당시 경영진에 대한 지나친 비하인지도 모른다.

그럼 도대체 코닥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기술에 무지한 것이며 미래를 몰랐다는 것 모두 어느 정도 함정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디지털 카메라를 필름 카메라의 현현이라고 생각하던 무지를 꼽는다.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에 찍힌 만큼 선명한 화소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감은 이 모든 무지가 만들어 결정적인 함정이었다는 셈이다. 그러니 DCS 100이 무려 2만달러나 하던 것도 이 강박감의 표현이었다.

기업사에는 그 시대를 풍미한 혁신 아이콘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들의 궤적에 진정 주목할 만한 것은 얼마나 스스로를 극적으로 와해시켰는지에 있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코닥은 시도는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듯하다.

코닥이 파산하면서 오포토는 셔터플라이(Shutterfly)란 기업에 3500만달러에 팔린다. 반면 얼마 뒤 설립 18개월 밖에 안 된 직원 13명짜리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 1억달러에 팔린다. 공교롭게 셔터플라이는 아직 주문형 포토앨범이나 사진카드를 제작하는 기업으로 남아 있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87>한 함정의 또 다른 함정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