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퍼블리시티권 입법을 기대하며

[ET단상]퍼블리시티권 입법을 기대하며

최승재 세종대 교수(변호사) sjchoi@sejong.ac.kr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K-팝으로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린 방탄소년단(BTS)에 이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에서 우리가 꿈이라고 생각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올해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이 주목하는 콘텐츠 생산 국가가 됐다.

이 같은 콘텐츠 산업의 성장은 이 콘텐츠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수나 배우의 상업적·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봉준호는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오르게 됐고, 이정재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우리 드라마는 일본에 한류를 불러일으켰다. 그 중심에 '겨울연가'가 있었고, 배우로는 배용준이 있다. 욘사마로 불린 그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배용준은 법적으로도 의미 있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에서 퍼블리시티권 관련 판결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유명인의 성명·초상·목소리 등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 즉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권리는 미국에서 맨 처음 프라이버시권에서 분리돼 나왔고, 미국에서 인정되고 난 뒤 영국의 리한나 사건이나 일본의 핑크 레이디 사건 등 점차 각국 법원에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핑크 레이디 사건 이후 배용준이라는 유명 배우의 퍼블리시티권 침해 관련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법원은 이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 법원은 이런 권리를 인정할 필요성은 있지만 법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이 권리를 인정할 수 없고, 대신 위자료 배상을 해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그런데 위자료 배상은 얼마 되지 않으니 광고에 유명 배우를 사용하고는 위자료 배상을 해 주면 그만인 상황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권리를 외국에서 주장하는 것이 우리나라 유명인의 상황이 된 것이다. 장동건 선글라스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에서 우리 법원이 취한 태도는 지금까지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허청이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우리 콘텐츠를 선도하고 있는 유명인의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우리 배우와 가수의 권리를 보호해야 세계적으로도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법원이 입법된 게 없어서 보호하지 못한다고 하니 특허청이 나서서 입법적인 보호를 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BTS의 초상 등을 무단 사용해 화보집을 제작·판매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인정했다. BTS의 초상이 지니는 경제적 가치를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다만 대법원의 판결은 부정경쟁방지법의 보충적 일반조항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호를 위해서는 별도의 명문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특허청의 입법 노력이 결실을 맺어 우리 배우와 가수들이 오랜 기간 형성해 온 상업적 가치가 제대로 보호되고, 연예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또 다른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퍼블리시티권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권리가 아니라 입법이 되어 정식으로 권리목록에 포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