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공지능(AI) 기계가 처절하게 싸운다. 위기에 처한 인간은 암흑 구름을 만들어 AI 기계가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태양을 차단한다. 인간의 승리로 끝날 것 같던 순간 AI 기계는 최후의 일격을 가해 인간을 가상세계에 묶어 두고 인간의 몸에서 생체에너지를 꺼내 쓰며 지구를 지배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배경이다. 그만큼 에너지와 에너지 거버넌스 시스템은 중요하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경고를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다. 이후 각성한 인간은 땔감·석탄·석유·원자력·태양·바람을 이용해 전기 등 에너지를 만들어 썼다. AI시대에 에너지 생산·소비는 어떻게 될까. 데이터·AI를 통해 에너지 수요, 공급 등의 예측을 정확히 할 수 있다. 다양한 에너지를 네트워크로 연결·보완·포트폴리오(Energy Mix)로 구성해 효율적으로 생산·소비한다. 이것이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다. 수소, 바이오 등 신규 에너지 개발과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등 보관의 효율성 증대, 투명·공정하면서도 실행력 있는 에너지 거버넌스 시스템을 통해 적은 에너지로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건 미래의 일이다.
당장은 데이터 폭증에 따라 우후죽순 늘어나는 데이터센터와 기계장치 증가로 에너지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정체되면 에너지 사용량도 줄기 마련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경제는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은 제한적이다. 세계적 탄소중립 약속에 따라 석탄·석유 발전은 줄일 수밖에 없다. 태양광·풍력·수력 발전은 일조량·바람·수량에 영향을 받고, 비용이 많이 들어 믿을 만한 에너지원이 되지 못한다. 태양광 패널은 많은 땅을 차지하고, 수력발전이 내는 소음은 어업에 영향을 미친다. 풍력발전소는 서해에 세울 수 있지만 지면이 가파른 동해에는 효과적이지 않다. 원자력발전은 안전성을 우려하거나 핵폐기물 처리 문제로 유해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우리 원전 기술이 세계 정상이고, 안전하다는 시각도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석유 발전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원자력발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기술·정책 문제를 넘어 정치 쟁점이 돼 어느 한쪽이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사회가 탄소 배출을 가속했다 하더라도 인간의 행위가 기후까지 변화시켰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과대평가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인간의 탄소배출을 지목했다. 석탄·석유 등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대기 중 탄소 농도가 증가해 기후변화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동식물 생태계 파괴나 자연재해 및 해수면 증가 등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길 것이고, 이미 시작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국제사회의 약속이다. 지난 2018년 10월 유엔 기후변화 협의체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나라 등 124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석탄·석유를 이용한 에너지 생산은 줄여야 한다. 가스를 이용한 발전은 100% 수입하는 가스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예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을 늦추자. 석탄·석유 발전을 줄이면서 부족한 에너지를 신규 에너지가 뒷받침하고, ESS 등이 연결된 AI 스마트그리드가 제대로 작동할 때까지다. 슈퍼그리드도 논의해야 한다. 인접국과의 협력을 통해 부족한 에너지를 빌리고, 남을 때 빌려주자는 것이다. 물론 유럽과 달리 러시아·중국·일본은 멀리 떨어져 있고, 외교·안보 문제도 있다. 그렇다고 협력을 미룰 수는 없다. 대량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땅속 깊이 넣어 퇴적시키는 기술도 발전시켜야 한다. 모든 것을 정치와 감정에 맡기는 순간 해결책 찾기는 어렵게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