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에는 20명이 넘는 영웅이 등장한다.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블랙 팬서 등은 어느 한 명을 최강자라고 꼽기가 어려운 슈퍼 히어로들이다. 강점 분야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완벽하진 않다. 보통 인간처럼 실수도 하고 결함도 있다. 그러나 파괴돼 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뜻을 모아서 하나로 뭉치니 환상의 드림팀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이들이 성공적 결과를 낸 것은 팀워크, 융화를 의미하는 '팀 케미스트리'가 최고였기 때문이다.
팀 케미스트리가 히어로 영화나 스포츠 경기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좋은 기술을 제품화하고 시장에서 판매해 매출을 발생시키는 일련의 과정, 즉 기술사업화 분야도 관련 주체들의 단단한 팀워크가 필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기술사업화라는 긴 항해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어벤져스와 같은 드림팀의 도움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사업화를 추진할 때 매우 복잡한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아이디어 구현에 적절한 기술을 직접 개발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외부에서 도입해야 하고, 관련 투자도 유치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제품을 만들고 후속 연구로 제품 완성도를 높이며 마케팅을 진행해서 고객을 확보하는 등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자금이나 인력이 부족한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이처럼 다양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런데 기업을 도울 만한 역량이 충분한 외부 민간 전문가와 기관들이 있는데도 좋은 기술을 갖춘 기업이 정작 시장 가치 창출에는 실패하는 일이 많아 안타깝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년 동안 기술이전법 제정을 비롯해 관련 정책을 만들어 추진해 왔다. 기술거래 기관, 기술평가 기관, 사업화 전문회사처럼 기업의 기술사업화에 도움을 주는 드림팀을 육성하는 한편 나아가 건강한 기술사업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 드림팀에는 다양한 히어로가 포함돼 있다. 기술에 대한 인사이트와 아이디어가 뛰어나서 사업 아이템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기술의 미래 가치를 재무적으로 판단하는 투자 기관 또한 기술과 기술, 기술과 기업을 연결하는 민간 전문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기술사업화 시스템에 좀 더 쉽게 편입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돼 기술 개발, 자금, 인력, 판로, 글로벌화 등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을 돕는다면 우리나라의 기술사업화 성과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변화가 우리 사회 기술의 전환 속도를 앞당기고 있다. 탄소중립, 디지털전환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산업 구조 변화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이 날로 커지는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 시스템과 시스템이 손을 잡는 게 현명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오는 25일 '2021 대한민국 기술사업화 대전'이 '기술의 가치, 연대와 협력으로 높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앞당겨진 미래를 준비하고 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이 어떤 화두를 잡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놓고 얘기하는 행사다.
기술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유관 기관, 기업이 조화를 이뤄 연대·협력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돼 줄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기술사업화 생태계의 팀 케미스트리를 높여서 'K-테크'가 세계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날을 기대해 본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ycseok@ki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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