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POSTECH)은 극미세 물체를 분석하는 초대형 국가연구시설 3·4세대 방사광가속기부터 극저온현미경을 보유한 세포막단백질연구소에 이르기까지 바이오·헬스 연구 인프라를 모두 갖췄다.
생명과학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 연구 성과를 내고 있고, 기술이전으로 벌어들인 수익 83%가 바로 이 분야다. 인공장기와 백신 등 다양한 바이오·헬스케어분야 창업도 성공적이다. 이달 초엔 미국 하버드 의대, 시카고 일리노이 의대 등을 방문, 해외 성공사례를 보며 확신을 굳혔다.
포스텍이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연구중심 의대 설립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신뢰'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의료계, 지자체, 대학 등 연구중심 의대 설립 추진 주체들이 믿고 협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추진 동력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바이오·헬스산업이 포스텍과 포항을 넘어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는 김 총장을 만나 연구중심 의대 설립 추진 배경과 당위성, 향후 과제 등에 대해 들어봤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 왜 필요한가.
▲세계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의료기술 발달로 기대 수명은 늘었지만 우리 몸은 수명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늦게 진화하고 있다. 이는 의료비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지고, 그 의료비는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젠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 부담이 줄어들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건강하게 오래사는 방법에 인류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에 따라 바이오산업 시장은 오는 2027년 9113억달러(약 1084조원)에 이를 정도로 폭증할 전망이다.
특히 올해 바이오산업 시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기술이 DNA시퀀싱과 세포분석, 조직공학 및 재생이었다. 향후에는 여기에 나노기술까지 더해져 성장률이 가파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야는 의학보다 기초과학이나 공학에서 더 많이 다룬다. 지금의 의학교육은 향후 전개될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도입에 한계가 있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이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기대수명 연장뿐만 아니라 의료비 절감을 통한 사회적 부담 완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는 '국가적 어젠다'라고 생각한다.
-공학기반 의대를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의학과 공학이 별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공학 원리와 의학은 아주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공학의 언어는 수학이다. 앞으로는 의학의 언어는 공학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공학 기반 의대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예를 들어 힘과 운동, 에너지와 파동, 유체역학, 전자기학은 인체의 역학적인 면과 연관이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동맥경화는 혈관이 갈라지는 분지관에서 생기는데, 분지관에서 혈관이 막히는 것은 혈액이 혈관벽에 있는 내피세포에 상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유체역학으로 분석할 수 있다. 유체역학은 혈액운동에 응용할 수 있고, 전자기학은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컴퓨터단층촬영(CT), X레이를 이해하는 기반이다.
미국 사례를 들어보면 복수학위제나 더블트랙 등 방식으로 의학과 공학을 같이 전공하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왔다. 하지만 실제 학자들은 각각 프로그램을 따로 이수하는 형태로는 의학과 공학의 충분한 융합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어바나 샴페인(UIUC)이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2015년 출발해 2018년 첫 신입생을 받았고, 이제야 첫 졸업생을 배출하게 됐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위해 포스텍은 어떤 준비를 해왔나.
▲포스텍이 보유한 바이오 관련 인프라는 사실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3· 4세대 방사광가속기, 세포막단백질연구소 등 지금까지 갖춰온 인프라가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위한 토대가 됐다. 현재 포스텍이 보유한 인프라는 세계 어느 유수 대학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생명과학분야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기술이전과 창업 상당 부분이 바로 바이오분야다. 의학분야와 관련해서는 가톨릭의대와 협력해 포스텍-가톨릭의대 의생명공학연구원도 설립했고, 지금 괄목할 만한 성과도 내고 있다.
-이달 초 미국 보스턴과 시카고 등 선진 바이오 클러스터를 방문하고 느낀 점은.
▲많은 것을 느꼈다. 모더나 백신으로 화제가 된 랩센트럴은 옛건물을 리모델링해 화려하지 않은 일반 실험실에 불과했다. 하지만 랩센트럴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이곳에 입주할 기업을 뽑는다. 랩센트럴 내 작은 벤치 하나 사용료만 한 달에 600만원이 넘고 입주기간도 2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수많은 바이오벤처들이 이곳에 앞다퉈 입주하려고 한다. 이유는 하나의 커뮤니티이자 네트워킹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의학교육 변화도 흥미로웠다. UIUC가 설립한 칼 일리노이 의대는 3년간 커리큘럼을 개발했고, 한 과목당 임상교수 2명과 과학자나 공학자 1명이 팀으로 연결돼 인체별 커리큘럼을 만들었다고 한다. 인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학 원리를 우선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위한 향후 과정은. 그리고 걸림돌이 있다면.
▲우선 오는 2023년에 의과학대학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분자영상학, 화학면역학, 의료영상진단 소재, 기법 장비 개발, 뇌과학, 신경과학, 컴퓨팅 헬스케어(Computational Healthcare) 등 포스텍이 기존 강점으로 내세우는 연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다루게 된다. 이 분야 저명 의사과학자들을 초빙할 계획이다.
걸림돌은 연구중심 의대 설립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다. 연구중심 의대 필요성에 대해 우리 사회의 관심과 공감대가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시작했지만 결국 이들이 임상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해 제동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장치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신뢰와 긍정적 마인드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좋은 연구환경, 뛰어난 커리큘럼을 마련한다면 잘하는 분야가 분명한 의사과학자는 금전적 이유로 분야를 옮겨가지는 않는다고 본다.
-포스텍은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나.
▲연구중심 의대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포스텍 역할이 바뀌는 건 아니다. 오히려 포스텍은 사회와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지기 때문에 역할 확장이라고 보면 된다. 대학 내 여러 분야가 헬스케어와 융합, 혁신적 연구성과를 도출하고, 창업으로 이어져 관련 분야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바이오헬스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는 포항시에는 연구중심 의대 설립이 어떤 의미인가.
▲포스텍이 추진하고 있는 연구중심 의대 프로젝트에는 스마트병원 설립도 포함돼 있다. 1차적으로 낙후된 의료서비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을 비롯한 경북지역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특히 인공장기나 재생의학, 스마트기술을 접목한 포스텍만이 할 수 있는 특화된 병원이 설립되면 전국은 물론 세계 환자들이 포항에 있는 병원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역 발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지역의 경우 중요한 정주여건으로 교육, 의료, 쇼핑, 문화여가 생활을 꼽을 수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의료를 제외한 모든 분야는 인터넷과 비대면이 가능해 지역 한계가 없어지고 있다. 문제는 의료다. 최첨단 의료서비스가 지역 발전은 물론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연구중심 의대는 지역을 넘어 국가차원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미 인공지능(AI)이 인간 두뇌를 대체해 실제로 기계가 대부분 신체능력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인간 관심사는 이제 건강하고 오래사는 것에 쏠리고 있다. 연구중심 의대는 향후 국가의 중요 먹거리가 될 바이오·헬스산업시장 핵심이자 필수라고 생각한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구중심 의대 설립은 단순 의사과학자 양성이나 바이오산업시장을 선도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미래 세대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정부도 국가적 차원으로 관심을 갖고 의료 인력 증가라는 미시적 관점에서 벗어나 미래 바이오산업 양성과 시장 선도는 물론 국민 의료비 경감, 바이오·헬스분야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거시적이고 입체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논의해주길 바란다.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