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디어 시장 모습을 보면 열강 사이에 낀 대한제국 모습과 비슷하다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넷플릭스로 시작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국내 진출이 올해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가 통신사와 연합군을 이루면서 등장해 방송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기에 일찌감치 HBO맥스까지 국내시장에 곧 들어올 것이라며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토종 OTT는 차별화한 오리지널 콘텐츠만이 살길이라면서 콘텐츠 제작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붓겠다고 한다. 한편으로 화력 차이는 있지만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달라고 정부를 향해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방송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OTT는 원래 인터넷을 통한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 제공을 통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발전으로 이제는 큰 어려움 없이 스트리밍으로도 채널을 송출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가상 유료방송서비스(vMVPD)라고 이른다.
스트리밍 서비스 가운데 세계적으로 이용을 가장 많이 하는 유튜브도 유튜브TV를 유료로 출시, 채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튜브TV가 내년 초 광고기반무료스트리밍(FAST; 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플랫폼 제공을 목표로 콘텐츠제공사업자와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제공되는 유료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무료서비스 추가는 비용이 추가되는 것도 아닌 반면에 광고 매출을 추가로 올릴 수가 있다. 처음 시작하는 서비스로 브랜드를 알려야 하는 어려움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 사용자 대상 마케팅으로 순식간에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국내 TV 제조사인 LG전자가 미국에서 자사 스마트TV에 FAST 플랫폼 채널 '투비(Tubi)'를 입점시킨다고 한다. 투비는 음성 리모컨 또는 TV 메뉴를 통해 시청이 가능하다.
얼마 전 LG전자는 미국대학농구(NCAA) 토너먼트를 위한 채널을 스마트TV에 개설, 올해부터 스트리밍으로 경기를 방송하기로 독점 계약했다. LG 스마트TV에서 NCAA 채널을 통해 선수와 학교의 다양한 모습뿐만 아니라 지난 경기도 시청할 수 있다.
VoD 위주이던 OTT가 이제는 스트리밍 채널 서비스를 제공하고 스마트TV 안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상파 디지털TV 안테나가 설치된 스마트TV(커넥티드 TV)를 통해 지상파 포함, 시청자가 원하는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채널뿐만 아니라 서비스에 따라 VoD도 무료로 제공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기존에 가입해서 시청한 유료방송과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방송신호가 기존 케이블망 대신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차이만 있는 것이다. 시청자에게 방송신호 경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편하고 쉽게 원하는 채널과 콘텐츠를 보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FAST 플랫폼이 스마트TV를 만나면 이른바 '코드커팅' 시청자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게 된다.
OTT가 VoD를 넘어 스트리밍으로 독자 플랫폼뿐만 아니라 스마트TV를 통해 채널을 실시간 제공하는 것은 기존 방송사업자나 정책 당국자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상황이다. 그러나 시청자에게는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과 달리 아직 국내에선 고착화된 저가 유료방송과 규모의 경제로 스마트TV에서 채널을 서비스하는 데 콘텐츠 사업자나 TV 제조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정치 계절에 자주 회자되는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처럼 디지털과 인터넷 세상 속에서는 '미디어도 생물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계속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해외 미디어산업의 변화 물결이 다양한 형태로 국내까지 넘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