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한나라 초기 경제 시절에 조착(晁錯)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독선적이고 교만했지만 좋은 정책을 많이 내놨다. 당시 국토는 황제가 관리를 파견해서 직접 다스리는 나라, 지방과 왕족에게 맡겨 다스리는 나라 둘로 나뉘었다. 조착은 왕족의 나라를 빼앗아서 직접 통치하자며 중앙집권을 주장했다. 놀란 왕족이 간신 조착을 죽인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신하들은 조착을 죽여서 왕족들을 달래자고 했다. 이튿날 조착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처형됐다. 세월이 흘러 경제가 거듭 물었다. “요즘 직언하는 신하가 없는데 이유가 뭔가?” 모두 머뭇거리는데 한 신하가 말했다. “폐하께서 조착을 죽인 후로 바른말을 하는 신하가 없습니다.”
#2 삼고초려. 신하 될 자는 생각이 없는데 왕이 될 자가 세 번이나 찾아갔다. 문치주의를 표방한 송나라 이후 사대부의 꿈이고 참모의 로망이다. 삼고초려는 유비 사후 제갈량이 북벌을 준비하며 작성한 출사표에 나온다. 신빙성은 옅다. 제갈량은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숨어 있을 때 접촉한 지역 인재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왜 유비를 택했을까. 유비에게는 새 국가 건설이라는 포부가 있었다. 백성을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포부와 매력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조와 손권에게는 이미 많은 인재가 있어서 '그들 가운데 하나'로 그치기 싫은 제갈량의 선택이다. 유비 생존 시엔 관우, 장비 등 가신에게 막혀서 적벽대전 등을 제외하곤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간달프처럼 묘사될 뿐이다. 제갈량은 유비 사후에 나라를 다스리며 숨겨둔 재능을 발휘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엔 데이터를 수집·가공·분석하고 국민과 고객의 진정한 수요를 찾아서 창의적 상품과 정책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기업과 정부에서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 AI시대 과학기술·정보통신 참모의 적격성은 무엇일까.
첫째 글로벌·로컬 감각을 동시에 지니고 창의적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세계가 디지털로 연결된 거대한 시장이다. 해외 주요국의 경제·산업·시장 지식으로 정치·외교·안보와 연계하며 국내 사정과 결합해서 생각해야 한다. 퍼스트 무버를 꿈꾸면서도 해외 입법·사례를 찾아 단순 대입하는 사람은 사대주의에 불과하다. 통신망 보유 사업자가 모든 콘텐츠업체에 동등하게 통신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망중립성 논의를 보자. 우리 통신망이 가장 발전해 있는데도 미국이나 유럽의 법·제도를 본받자며 다툰다. 우리에게 맞는 독창적 해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윗사람이 하는 말에 반대할 줄 알아야 한다. 반대 이유가 납득돼야 하고, 대안이 있어야 한다. 원격의료 장비·소프트웨어(SW)·시스템을 공급하는 사업을 보자. 의료법에 막혀 있으니 할 수 없다고만 하면 좋은 참모가 아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심각 이상 위기 단계에서 원격으로 환자 관찰·진단·처방을 할 수 있고,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해외환자에 대한 원격의료가 인정됐다. 단계별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놔야 한다. 법·제도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전략도 들어 있어야 한다.
셋째 자신보다 나은 인재를 찾아서 추천할 수 있어야 한다. 참모는 자기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선 안 된다. 사람 찾는 눈이 매서운 참모가 돼야 한다. 중국 제나라 포숙은 자기 자리를 양보하며 관중을 추천한 일만으로 명재상의 반열에 올랐고, 한나라 소하는 한신을 천거한 것만으로 그 공을 다했다.
넷째 핵심 목표·가치가 조직이나 윗사람과 다르면 과감히 떠나야 한다. 실행 수단에 관한 의견 차이는 자연스럽다. 토론·설득을 거치면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 그러나 목표가 다르면 갈라서야 한다. 몸과 마음을 다칠 이유가 없다. AI시대도 AI보다 사람이 먼저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