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두렵습니다. 창업부터 결국 폐업까지 규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의 뼈 있는 지적이다. 초기 창업을 지나 스케일업으로 성장할수록 규제의 덫에 갇혀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우리나라는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애플리케이션(앱) 마켓 사업자의 갑질을 세계 최초로 규제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 플랫폼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규제도 과감히 진행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토종 플랫폼이 몇 안 되는 나라인데 '진흥'보다는 '규제'를 택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내 플랫폼 업체의 업력과 규모가 독과점을 논할 정도의 역량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식적이지 않다는 시선이다.
정부와 여당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법'(정부안)과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등의 법안을 12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플랫폼 업체의 '독점 지위'를 이용한 폐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결론적으로 국내 업체의 독점 지위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검색 부문에서 네이버의 위력이 예전 같지 않다. 모바일 메신저에서는 카카오가 지배적인 위치에 있긴 하지만 소셜미디어 분야에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이 압도적 위치를 차지한다. 앱스토어 플랫폼에서는 구글플레이가 1위이다. 국내 '원스토어' 점유율은 12%에 불과하다. 쇼핑 분야에서는 2017년 기준 국내 1위 e커머스 플랫폼은 이베이였다. 2위가 11번가였다. 올해는 네이버, 쿠팡, 이베이, 11번가 순으로 바뀌었다. 숙박 온·오프라인연계(O2O) 역시 여기어때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야놀자가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섰다. 이용자의 '멀티호밍' 현상이 일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장 독점보다 1, 2위 자리를 놓고 다툼이 치열하다.
과거 규제 기준이던 '규모의 경제'를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플랫폼 규제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규모의 경제 접근으로 만들어진 규제 법안은 이미 많다. 특히 온플법은 대규모유통업법과 매우 유사하다. 규모 기준을 매출 1000억원으로 정했다.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도 중개수익 1000억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 금액 1조원 이상인 플랫폼을 규제한다.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등 규제 조항도 비슷하다. 대규모유통업법 외에도 공정거래법, 전기통신사업법, 약관규제법, 표시광고법, 전자상거래법 등 플랫폼 기업이 직면한 법률만 수천 개가 작동되고 있다.
기존 법안과의 중복 가능성, 규제 부작용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하지만 그런 모습은 오간 데가 없다. 과연 '플랫폼' 산업의 정의를 제대로 내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플랫폼 산업은 단일시장이 아니다. 매우 이질적인 시장이 뒤섞여 있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의회가 3월 공유자동차 '타다' 영업을 금지하는 의원입법을 강행했다. 결과적으로 모빌리티 시장은 카카오택시 등 가맹택시 중심으로 재편됐고, 국토교통부가 예고한 모빌리티 다양성은 실종됐다.
초고속으로 입법된 법안이 촘촘하게 만들어졌을 리가 만무하다. '대충 만든' 규제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국민일 수밖에 없다. 누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 권한을 거머쥐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플랫폼 생태계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방안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규제는 심사를 신중하게 한 후 적용해도 늦지 않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