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창업주인 보덕(普德) 류홍우(柳鴻佑) 명예회장이 10일 9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자동차 엔진 핵심부품인 피스톤링, 실린더 라이너, 피스턴과 스파크 플러그 등울 생산하는 유성기업그룹 창업주다.
1962년 설립한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의 발기인 49명 중 유일한 생존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 한국표준협회 감사, 선린중·상고 총동문회장, 병산서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자동차산업발전과 사회봉사에 많은 업적을 쌓으며, 1981년에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최초로 품질관리 대상을 수상했다. 또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철탑, 동탑,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시영(유성기업 회장), 시왕(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시창(변호사, 경희대 로스쿨 교수), 시훈(동서페더럴모굴 회장), 시혁(우진공업 회장)과 딸 은이, 숙이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1호실(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마련됐다.
류 명예회장은 본관은 풍산류씨, 서애(西厓) 류성룡의 12대손으로 1923년 1월 경북 문경군 산양면에서 태어났다.
류 명예회장의 인생은 자동차부품상을 하면서 바뀌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군에서 제대한 뒤 1953년 서울 종로에 자동차부품 판매회사인 '동명상회'를 열었다. 오늘날 유성기업의 모태가 된 회사다.
류 명예회장은 1959년 36세때 유성공업사(현 유성기업)를 설립하며 피스톤링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피스톤링은 주조와 정밀가공기술, 설비가 필요한 사업으로 주변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류 회장은 국내 경쟁사가 없는 시장이라고 판단해 사업을 이어갔다.
서울 오류동에 새 공장을 마련해 유성기업을 출범했다. 유성은 류 명예회장의 성인 '류(柳)'와 성공하라는 뜻의 '성(成)'을 합친 글자다. 창업 후 그는 “기술 없이 발전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기술 안정화에 힘을 쏟았다.
가장 큰 과제는 불량률 30%를 줄이는 것이었다. 1969년 일본의 제국피스톤링(TPR)과 기술제휴를 맺는 등 선진 기술을 배우고 자체 기술역량도 강화하며 평판을 쌓아갔다.
특히 현대자동차 포니의 사후관리(AS) 부품은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1979년 국내 최초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만든 '3피스 오일링'이 그 주인공이었다. 일본에서 오일링을 수입해오던 현대차는 유성기업으로 공급처를 바꿨다.
제품도 다각화하며 스파크 플러그 국산화에 나섰다. 1969년 일본 NGK와 합작사 한국프러그공업(현 우진공업)을 설립했다. 또 영국 AE사와 손잡고 1984년 피스톤 제조사인 동서페더럴모굴을 설립했다. 1988년에는 일본 다이도메탈과 합작해 엔진 베어링을 만드는 동성금속을 세웠다. 일본 닛단발브와 합작해 밸브 리프터를 생산하는 신화정밀을 세우고, 밸브가이드와 밸브 시트 등을 만드는 유성피엠공업을 영국 T&N그룹의 계열사인 브라이코와 기술제휴를 비롯해 합작투자해 설립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기술제휴와 합작은 꾸준히 이어졌다. 2000년 10월 TPR과 합작해 Y&T파워텍을 세우고 알루미늄 블록 엔진용 실린더 슬리브를 생산했다. 2004년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페더럴모굴을 인수해 피스톤 제품을 생산했고 일본 TPR, 중국ATG과 합작으로 CUPR를 설립해 피스톤링 등을 만들어 북경현대자동차 등 중국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류 명예회장은 1993년 재단법인 '보덕학회'를 설립해 후원사업도 했다. 보덕학회는 사찰, 법회, 교학연구, 사회복지와 전법에 관한 제반 사업을 후원했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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