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 의료기기 성능평가 및 신뢰성 확보를 위한 국제표준 개발을 시작했다. 표준화된 성능·품질검증 체계 마련으로 의료 AI 확산을 위한 탄탄한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달 26일, 국제전기표준화위원회(IEC) 의료용 전기기기(TC 62) 기술위원회에서 'AI·머신러닝 기반 의료기기에 대한 성능평가 프로세스' 국제표준 신규제안 1건이 승인됐다고 14일 밝혔다.
연구진 제안 표준은 6주간 진행된 IEC TC 62 기술위원회 소속 30개국이 참여한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특히 IEC TC 62에서 AI 의료기기 표준 승인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최근 의료 분야에서는 AI 기술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 진단 및 예측을 돕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AI 탑재 의료기기는 표준화된 성능평가 체계가 없어 의료기기 업체 자체 임상시험 결과와 기술문서자료를 기준으로 허가 및 심사를 받아왔다. 평가 기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이번 국제표준 신규제안 승인으로 연구개발(R&D) 및 인허가 공통 기준이 수립되면 더욱 안전하고 정확한 AI 의료시대를 열 수 있다. 인허가에 필요한 시험 절차와 비용도 절감돼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며, 다른 AI 산업분야 성능과 품질평가 용도로도 손쉽게 확장할 수도 있다.
본격 표준 개발을 위해 이달 1일 미국 식품의약국(FDA), 중국 식품의약품검정연구원(NIFDC) 등 국제 의료기기 표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팀이 신설됐다. 프로젝트 팀 의장과 프로젝트 리더에는 전종홍 ETRI 책임연구원이 지명됐다. 표준 개발에는 약 3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 밖에도 ETRI는 종합적인 AI 성능평가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ISO와 IEC의 합동 기술위원회를 통해 'AI 시스템 테스팅' 국제표준과 '시험용 데이터 표준 운영 절차서' 등 국제표준 2건도 이미 제안한 상태다.
연구진은 AI 의료기기 분야 국제 공통 가이드라인 제정 및 국내 표준화 경험을 바탕으로 IEC TC 62 산하 SNAIG(소프트웨어, 네트워크, AI) 자문그룹 활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결과, 이번 국제표준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내년 2월, 신규제안 2건에 대한 투표가 끝나면 표준화된 시험용 데이터 준비, 성능·품질 평가, AI 시스템 시험으로 연계되는 AI 종합 평가체계를 위한 국제표준을 연이어 개발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이 표준들이 의료용 AI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EU), 미국 FDA 등에서 제안하는 AI 관련 규제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신뢰할 수 있는 AI 실현' 기초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김명준 원장은 “ETRI는 신뢰할 수 있는 AI 실현에 필요한 기술과 표준 선도를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다가올 AI 패권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영규 식품의약품안전처 팀장은 “AI 의료기기 인허가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주도로 성능평가 국제표준 개발을 선도하게 되었다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국제 규제 조화를 위해 다른 국제표준화 기구와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성과는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 사업' 일환으로 수행된 결과다. 사업에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김휘영 교수, 홍헬렌 서울여대 교수, 인그래디언트 등이 참여했으며 40여 명의 산·학·연·병 자문위원단이 국제표준화에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