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명예회장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명예회장

현재 한국은 3대 인구지진 징후라고 불리는 인구 감소, 초고령화 사회 진입, 지역 소멸 현상으로 극단적인 사회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올해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구는 2017년 5136만명에서 2117년 1510만명으로 100년 후 현재의 30%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함께 인구구조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은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는 11만2508명 늘어 2592만5799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는 지방 인구 유출에 따른 결과로 현 상황이 지속되면 전국의 시·군·구는 소멸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46%인 105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꼽혔다.

정부는 이런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소멸위기에 처한 인구 감소지역에 대한 특별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2022년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신설해 2031년까지 전국 10개 광역자치단체에 매년 1조원씩 지원하고 이를 통해 지방 인구 감소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해 거액의 예산을 쏟아 붓는다고 해서 지방 소멸 현상을 저지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도권으로 떠난 생활 인구를 다시 지방으로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경쟁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1970년대는 구미, 창원, 울산, 여수, 광양 등에 조성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비교적 지역 발전이 균형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생산시설이 수도권과 해외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지방 경제 쇠락 및 수도권 집중화가 본격화됐다. 이러한 현상은 제조업 사양화로 몰락한 미국 5대호 주변의 러스트벨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방 소멸화 저지 및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의 자립적 경제 생태계 활성화를 바탕으로 지역 일자리 취업이 지속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특성을 반영한 연구개발(R&D) 정책 확립 및 지방 자립도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지역주도형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지역 주도 과학기술혁신체제 및 지역의 '자율기획 R&D 추진제도' 구축을 위해 국가 R&D 예산에서 지방 비율을 절반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지방 지자체가 기초 및 기반연구 지원과 기술사업화를 담당하도록 해 지방정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게 펀딩할 수 있는 기능도 부여해야 한다. 즉 현재 중앙집권적 과학기술발전 모델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방 분권적 발전 체제를 구축해 지자체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또 '지방대학 육성-지역대학 특화-지역산업특화-일자리 창출'이라는 지역 역량 강화를 위한 선순환체제가 이뤄지도록 지자체별 R&D 기획 전담기관을 설치해 지역 대학과 지역 우수연구 인력 활용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각 지자체 힘이 강화된다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 확대는 물론 지방 비즈니스 지향성 및 융합성이 강화되면서 궁극적으로는 지역균형 발전까지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1995년 경제 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자신의 저서 '국가의 종말'에서 지방이 글로벌 경제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공간 단위라고 말하고 있다. 일찍부터 지방 존립의 중요성을 인지했던 일본은 2014년 도쿄대 마스다 히로야 교수가 주장한 '지방소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생활 인구를 지방으로 유인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한국에 비해 일찍 지방 소멸화에 대응해 온 일본을 거울삼아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해결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작은 땅덩이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이제는 수도권으로 몰려있는 민심을 지방으로 돌릴 만한 매력적인 지역 경제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단순히 예산으로만 꾸며진 일시적 혜택이 아닌 힘 있는 지방을 길러낼 때다.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명예회장 shnahm@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