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신남방으로 '디지털 통상 고속도로'를 놓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바야흐로 디지털 경제 시대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해외제품을 구매하고 전 세계 영화와 드라마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사용한다는 뜻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표현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제 디지털 경제는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었다.

특히 신남방 국가, 아세안 디지털 경제 성장속도가 경이롭다. 아세안은 인구 6억7000만명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로 젊고 역동적인 시장으로 전체 거래에서 전자상거래 비중은 2년 만에 250% 상승했다. 마치 정보화 초기에 개도국은 유선전화 없이 바로 무선전화로 '점프(leapfrog)'했듯이 은행 계좌도, 집에 컴퓨터도 없는 젊은 층이 오프라인 쇼핑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바로 휴대폰으로 결제하는 온라인 전자상거래로 점프하고 있다.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이 디지털통상 글로벌 리더로 앞서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최근 '오징어게임' 'BTS' 등 K-드라마, K-팝 등 K-컨텐츠가 인종, 국경, 나이를 초월해 인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동남아에 가서 현지 온라인플랫폼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보니 과거 프랑스, 이탈리아 하면 떠올리던 명품 이미지를 디지털 시대에서는 한국 콘텐츠가 이어받았다고 평가한다. 젊고, 세련되고, 유행을 선도하는 소프트파워 이미지는 한국에 대한 전반적 신뢰와 호감과 결합해 '코리아 프리미엄'이 됐다. 시장에서는 K-콘텐츠, 한류 상품에 대한 수요가 가장 '핫(hot)'하다는 것이다. 영국 유명 월간지 '모노클'(Monocle)이 발표하는 소프트파워 국가별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010년 19위에서 지난해엔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아이디어·기술·브랜드를 앞세운 K-컨텐츠, 우리나라 중소벤처·스타트업이 발 빠르게 움직여 신남방이라는 디지털경제 '노다지'를 선점하면 또 하나의 큰 성장엔진이 될 것이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깔아 수출 한국과 산업강국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디지털 경제를 선점토록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디지털 통상 고속도로'를 깔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이 디지털 세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난주 타결한 최초 디지털 통상 협정인 '한-싱 디지털동반자협정(DPA)'은 우리 기업에 디지털 시대 세계로 수출길을 열어줄 고속도로와 같은 존재다.

한-싱 DPA 타결은 신남방 지역 디지털 허브인 싱가포르와 디지털 교역 확대는 물론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한국과 신남방 국가 간 디지털 교역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디지털·비대면 방식 수출을 보다 용이하게 해 중소벤처·스타트업 수출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 참여도 촉진할 것이다. 싱가포르 대표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라자다(Lazada), 쇼피(Shopee) 등은 아세안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모델과 네트워크를 갖췄다. 이를 활용한 우리 중소기업 제품 아세안 시장 수출 증대가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아·태지역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될 디지털 통상 규범 논의에서 우리나라가 주도적 역할을 할 기반도 마련했다. 현재 진행 중인 뉴질랜드·칠레·싱가포르 3국과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가입 협상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유럽연합(EU), 미주 등으로 우리 '디지털 통상 고속도로'를 넓히겠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역설했다. 'K-콘텐츠'와 'K-소프트파워'야말로 약 100년 전 백범 선생이 말한 높은 문화 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마음껏 세계로 전파할 '디지털 통상 고속도로'를 곳곳에 놓아줘야 할 때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hyeo@moti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