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심인 최태원'의 가장 큰 후회는 '이사회'

공정위, '사업기회 제공'으로 최태원·SK 제재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 도착해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 전원회의가 열리는 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 도착해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 전원회의가 열리는 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법률·절차 문제가 없는지를 거듭 확인했고, 이사회를 회피한 적 없다. 당시 이사회를 어떻게든 열었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5일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서 SK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서 이사회를 열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지난 2017년 반도체 포트폴리오 강화를 목적으로 SK실트론(당시 LG실트론)의 주식 51%를 매입했다. 이어 KTB PE가 보유한 19.6%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고, 우리은행 채권단이 보유한 29.4% 지분은 최 회장이 개인 자금으로 매수했다. 공정위는 잔여 지분 인수가 회사의 사업 기회를 총수에게 제공하면서 합리적 검토 없이 기회를 포기한 것으로 봤다.

최 회장은 정공법을 택했다.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공정위 전원회의에 직접 출석했다. 최 회장은 특히 “이사회를 기피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면서 “이사회를 개최하기에는 안건이 모호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잔여 지분을) 내가 산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가 낙찰받을 수 있으니 그걸 포기하는 게 맞냐는 것은 이사회 안건이 뭔지 불명확한, 희한한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이사회 입장에서 뭘 의결해야 하는지 모호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잔여 주식을 낙찰받을 공산이 커지자 재차 이사회 개최의 필요성 여부를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당시 거버넌스위원회에서 (이사회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면서 “이사회를 회피하려 한 적 없고 회사도 회피한 적 없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마지막 최후진술에서 “실트론 지분 인수 당시 수형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어서 조그만 실수도 그룹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조심했다”면서 “실트론 인수는 그룹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었지 회사 이익을 가로챌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보유한 인크(SK㈜) 주식 규모가 굉장히 크다”면서 “인크에 피해를 끼치겠다는 생각은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공정과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했다”면서 “총수 이익을 위해 기업을 동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22일 이사회와 같은 적법한 기관이 충분한 정보를 받은 상황에서 이사들이 충실 의무에 기초해 합리적 판단을 내려야 합리적 경영 판단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이 잔여 지분을 인수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이사회를 열지 않아서 합리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봤다.

공정위는 최 회장과 SK㈜에 각각 과징금 8억원, 총 16억원을 부과했다. 다만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사건 위반 행위는 이사회 승인 절차 흠결 등 절차 위반에 기인한다”면서 “위반 행위 정도가 중대·명백하다고 보기 어렵고, 최 회장이 사업 기회를 제공하도록 SK㈜에 지시한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없어 고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