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영화 '미나리'로 시작한 K-콘텐츠 파워가 드라마 '오징어게임' '지옥' 등으로 이어졌다. 방탄소년단(BTS)은 유엔 총회에서 연설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팝 그룹으로 성장했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대박, 먹방 등 우리말 26개가 대거 등재됐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이 컸지만 우리 특유의 창의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K-열풍의 원조는 언제, 무엇부터였을까.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산업·기술 분야에 모이기 시작한 때라고 생각한다. 기관장으로서 다양한 국가 기술 혁신 지원 기관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많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에 주목한다. 먼저 한국의 산업·기술 수준이 기술 선진국과 견줘도 대등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하나는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저력이 독보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이 같은 K-테크 특징을 강점으로 삼아 개발도상국에 공공개발원조(ODA) 형태로 산업·기술 성공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우리 제조업의 역량을 활용해 개도국의 산업 역량 강화를 돕고, 이렇게 형성된 연대와 협력 관계를 강화해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신흥 시장 진출 발판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012년에 시작된 정부의 산업기술 ODA는 2017년 에너지 ODA로 영역을 넓혔다. 예산은 초기 50억원에서 올해 460억원으로 커졌다. 협력국 권역은 아시아·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남미·아프리카로까지 확대됐다.
특히 KIAT가 추진하는 에너지 ODA는 모두 탄소중립 실현 과제를 담아 눈길을 끈다.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군도에 있는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디젤발전을 대신할 태양광 마이크로그리드를 설치하거나 인프라가 취약해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한 미얀마에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드는 것 등이 대표 사례다.
현재 캄보디아,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온두라스 등에 태양광·풍력·소수력 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7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10개로 늘어난다.
플랜트 과제 규모가 소규모 수준이기 때문에 획기적인 탄소 감축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해당 성공 모델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 개도국의 기술혁신을 지원하면서 글로벌 탄소중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후속 사업 개발로 확보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은 국내에서 거래할 수 있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물론 ODA는 구축 장비, 기자재, 시설에 대한 소유권과 이용권을 완전히 상대국에 넘기는 무상 원조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우리의 국외 탄소 감축 실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
다만 현지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이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에 나설 때 사업성을 저해하는 필수 연계 인프라 부문을 정부 무상 ODA와 연계해서 구축하면 기업은 투자비를 절감하면서 국외 감축 실적에도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현재 국제 무역 무대 상황은 그야말로 '각자도생'이다. 외교, 안보, 불안해지는 공급망 이슈 속에서 치열한 전쟁터를 연상케 한다. 반면에 산업·기술 ODA는 상대국과 신뢰를 구축하고, 나아가 상생을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협력이다. K-테크가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모두 활용하는 한국형 ODA의 전형이기도 하다.
올해로 산업통상자원부 ODA는 만 10년을 맞았다. K-테크에 대한 관심과 열풍을 탄소중립이라는 더 큰 결실로 이어 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ycseok@ki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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