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귀환한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2'가 막을 내렸다. 오미크론 변이가 빠르게 전 세계를 휩쓸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연이어 불참을 선언했지만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력을 선보이기 위한 참가기업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우리나라 기업도 500개사 넘게 참가하며 CES 무대의 당당한 주연으로 거듭났다. 유망 스타트업만 사상 최대인 200여개 기업이 부스를 마련 '제2 벤처붐'의 꽃을 피웠다.
CES 2022는 코로나19 펜데믹(대유행)과 탄소중립,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새로운 이슈에 따른 기술지형 변화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비대면 수요가 늘면서 메타버스, 로봇 등 기술이 각광 받았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글로벌기업의 한발 앞선 비전도 공개됐다. 이런 기술지형 변화에 따른 국내기업과 정부 준비도 필요하다. 전자신문은 각계 전문가가 바라본 기술 이슈와 향후 과제를 점검하는 결산 좌담회를 CES 현장에서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와 함께 진행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영삼 한국전자기술연구원장
△박청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부회장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
△이랑혁 구루미 대표
△이용성 오토엘 대표
◇사회=박태준 전자신문 CES 2022 특별취재팀장
◇사회(박태준 전자신문 팀장)=CES 2022를 둘러보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박청원(KEA 부회장)=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500여 기업이 참가했다. 코로나19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기업이 참여했다는 점은 글로벌 진출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술 부분에서 완성차 업체가 다수 빠졌지만 자율주행 부문에 있어 L4~L5까지 상용화 단계에 도달한 기술이 많이 선보였다. 이들 기술은 자동차에서 도심항공 모빌리티로 빠르게 확장하는 추세인데, 플라잉 자율주행이 예상보다 빨리 오지 않을까 싶다. 자율주행 핵심인 라이다 분야도 완성도가 높아져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메타버스 분야는 과거 PC나 2D 기반에서 3D로 진화하면서 완성도가 높아졌다. 특히 확장현실(XR) 기술과 대체불가토큰(NFT)으로 가상자산 소유권을 인정하는 기술까지 나오면서 메타버스 확산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한국전자기술연구원장)=메타버스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이 쓴 '스노우 크래쉬'라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20년 만에 세계 최대 IT쇼에서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화제나 주목이 아니라 산업화 단계의 전환점에 서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탄소중립이다. 주요 모빌리티 기업이 전동화, 고효율화, 최적화를 이야기하면서 빠뜨리지 않는 게 탄소중립이다. 이런 트렌드를 볼 때 우리 기업도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차의 '엠 비전 투고(M.Vision.2Go)'나 두산의 수소드론, 현대중공업 친환경 선박 개발 등 우리 기업이 탄소중립 주제를 적극적으로 다룬 것은 인상적이었다.
◇사회=국내 혁신기업도 대거 참여했는데 최고경영자(CEO)로서 바라본 CES 2022는 어땠나.
◇이동헌(에이슬립 대표)=CES 역사상 처음으로 헬스케어 기업(애보트) CEO가 기조연설을 했고, 행사 메인관에 헬스케어 기업이 자리았다. 주최측에 따르면 CES 부스 중 방문객이 두 번째로 많이 찾은 구역이 헬스케어존이었다.
헬스케어 산업은 기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다양한 데이터를 모으는 센싱과 분석 알고리즘이 결합되면서 파급력이 커졌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이후 병원 시스템이 가정까지 들어와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그동안 인공지능(AI)으로 병을 진단하는 영역까지는 다루지 못했는데 엣지 컴퓨팅, 온디바이스 AI 등 생체신호를 수집·분석하는 역량까지 발전하면서 헬스케어 기술 수준이 무르익고 있다.
◇이랑혁(구루미 대표)=로보틱스, 메타버스, AI 등을 주목해서 봤다. 우리 삶에서 가상과 현실 구분이 옅어지는 시점이 빠르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시장에서 화제였던 '아메카'라는 로봇은 사람과 똑같이 움직이고 대화까지 한다. 사람과 똑같은 로봇의 등장, 우리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
이번 CES는 코로나19 변수 등으로 과거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다. 규모는 줄었지만 새로운 비즈니스가 융합하면서 신시장이 만들어지는 현장이었다.
◇이용성(오토엘 대표)=꾸준히 화제가 된 것은 친환경과 자율주행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부스 참가 대신 회장이 기조연설을 했는데 두 이슈에 맞는 제품 소개 정도만 있었다. 이와 비교해 현대차는 로봇, MoT(Mobility of Things) 등을 들고 나온 게 신선했다. 과거 CEO의 비전과 철학이 스토리있게 실현되는 과정을 잘 소개했다고 본다.
자율주행이 화두가 되면서 라이다 업체도 상당수 참가했다. 하지만 자동차에 적용하는 프리미엄 라이다 기술이나 제품은 찾기 어려웠다. 이 영역에서 해상도와 거리감이 핵심인데, 자동차 환경에서 오랫동안 견딜 수 있는지 진지한 고민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오히려 자동차 라이다 기술 업체의 옥석을 가리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CES 2022에서 나타난 우리 기업의 강점과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었나.
◇김영삼=개인적으로 전기차 보다는 수소차가 탄소중립 실현의 최종관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가 수소차를 통한 탄소중립 실현에 앞장서야 한다. 정부가 수소차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 수소차 지원금은 대략 3000만원대인데 미국 캘리포니아만 해도 5000만원을 지원한다.
헬스케어 역시 우리 기업과 정부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서 우리 기업 아이디어가 많다. 이런 점에서 방대한 의료정보를 보유한 병원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병원에서 AI와 데이터를 결합해 사업을 추진하는 곳은 상급종합병원이 40%, 종합병원이 20% 정도다.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이 발목을 잡고 있지만 좀더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박청원=CES에 참여한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늘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단지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글로벌화됐고, 창의성도 돋보였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기술력 있는 유망기업이 많이 참여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로 진단이나 예측도 의미 있지만 디지털 테라피까지 겸비한다면 부가가치는 더 높을 것 같다.
글로벌 밸류체인이 변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대응이 어느 정도 됐는지는 의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패권 경쟁을 이유로 밸류체인을 내재화하고 있다. 여기에 맞춰 우리나라 대기업이 밸류체인을 정리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바란다. 공급망이 바뀌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리더십은 중소기업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효과까지 준다.
◇사회=우리나라는 벤처,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활성화됐지만 일각에서는 규제 등 보완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동헌=불면증은 이제 증상과 질환으로 여겨지면서 이번 CES에서도 크게 주목 받았다. 하지만 부정맥 등 심혈관질환이나 다른 질병군은 원격의료 금지 규제에 막혀 시장이 성장하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규제로 도입이 어려울 경우 글로벌 진출을 도와주는 정부 정책이 있어야 한다.
◇이용성=창업 후 정부 벤처 인증을 받았다. 이 인증을 받으면 다양한 혜택이 있을 줄 알았다. 대표적인 혜택은 3년 간 법인세 50% 차감이다. 그런데 창업 후 3년 간 매출이 발생하는 스타트업이 얼마나 있고, 그 금액이 얼마나 클지 의문이다. 인증 후 3년이 아니라 매출 발생 시점부터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인력 확보도 애로점이다. 스타트업은 자기 역할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을 뽑고 싶지만 이게 어렵다. 인건비를 좀 더 보존해주는 정책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현재는 청년 채용이 거의 유일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 기준을 올리는 등 다양한 지원책이 있으면 좋겠다.
◇이랑혁=중소벤처기업이 해외법인을 만들 때 제공하는 지원을 확대하길 희망한다. KOTRA가 해외법인 설립 시 사무실 지원 등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원 장소가 정해져 있어 한계가 있다. 위치에 제약 없이 다양하게 지원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또 해외에서 사업을 하려면 현지인력 채용도 필요하다. 국민세금으로 해외 현지인 채용을 지원하기 어려운 점도 이해한다. 일부 범위에서나 다른 방식으로 지원해 주는 정책이 있음 어떨까 싶다.
◇사회=CES에서 나타난 산업 트렌드를 바탕으로 전자기술연구원과 KEA의 올해 주요 사업과 향후 지원 방향을 설명해달라.
◇김영삼=전자기술연구원은 AI 등 ICT를 포함한 19개 교육과정을 제공해 그동안 1630명을 배출했다. 유망 기술을 사업화까지 이어지는데 초점을 맞추고 교육하고 있다. 또 기업 단계별로 지원 방식을 달리해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CES 혁신상 수상 실적은 2019년 5개에서 올해 27개까지 늘었다. 젊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게 전자기술연구원 역할이다.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는 실패를 경험하면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실패한 기업이 경험을 공유하고, 듣는 사람은 존중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싹트도록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박청원=KEA는 전자업계를 위해 전자부품을 제조하는 센터를 서울 용산에 설립했다. 스타트업은 초도 생산을 맡길 곳이 없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부담 없이 초도 생산을 하고,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개선할 기회를 기업에게 준다. 소프트웨어(SW) 부문에서는 가상현실(VR) 등 콘텐츠 개발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런 결과물의 신뢰성을 측정할 센터도 올해 운영한다. 이 뿐 아니라 개별기업이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공동으로 사용하는 플랫폼도 만들어 지원할 계획이다.
◇사회=내년 CES 전망과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랑혁=메타버스가 확산되면 가상공간에서 모여서 일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시대가 올 것 같다. 메타버스 워크플레이스가 나타나면 우리 기업에도 많은 변화가 올 것이다. 우선 물리적 공간을 떠나 다양한 곳에서 사는 사람을 채용할 수도 있다. 공간을 뛰어넘어 좋은 엔지니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대신 오프라인 조직이 가진 유대감은 많이 떨어질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주목 받는 것이 휴머니즘인다. 회사 유대감이나 조직원 정신건강 등을 관리하는 게 중요해질 것이다.
◇박청원=탄소중립 이슈가 커질수록 무역규제도 현실화될 것이다. 즉 각국 탄소중립 제도가 수입을 억제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각국이 탄소중립 관련 제도를 만들고 입법예고할 경우 우리 정부는 기업 의사를 반영해 유리한 쪽으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영삼=같은 생각이다. 내년에도 탄소중립이 화두가 될 것이다. 사업 현장은 물론 CES 2023에서도 탄소중립 관련 메시지나 기술 등이 주목 받을 것이다.
◇이용성=CES는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에도 중요한 기회다. 각 사업 영역별로 비즈니스 미팅을 많이 해야 하는데 사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는 컨택 포인트가 많지 않다. 정부와 대기업은 이런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텐데 함께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좋겠다.
◇이동헌=전통적으로 CES 기조연설에 나왔던 의제는 지속해서 주목 받았다. 내년에도 헬스케어 영역은 계속해서 조명 받을 것이다. 우리 회사도 창업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홍보나 마케팅 역량이 부족하다. 정부나 지자체 등 공동관을 꾸린 곳에서 개별 부스 기업도 함께 조명 받을 수 있는 마케팅 지원이 뒷받침되길 바란다.
정리=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