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나라 재상 관중이 기록한 관자의 “일년 계획은 곡식, 십년 계획은 나무, 평생 계획은 사람을 심는 일 만한 것이 없다”에서 비롯된 백년지대계는 흔히 교육의 중요성을 일컫는다. 하지만 40여년 전력산업에 몸담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교육 못지않게 중요하고, 또한 그렇게 배웠다. 국민 생활과 잠시도 떼어 놓을 수 없는 산업생산의 필수재이자 당면한 미래 기후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글로벌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시대의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이 위기로 다가오면서 탄소 중립이 당면과제가 됐다. 작년 11월 영국 글래스고 COP26에서는 파리협정이 천명한 지구 온도 상승 폭 1.5도의 목표를 유지하고, 석탄 등 화석연료 규제를 처음 명시했다. 그러나 초안의 석탄화력 퇴출이 감축으로 후퇴하는 등 반쪽 합의에 그쳐 당사국 간 이해조정의 어려움을 드러냈다. CO²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 방법론에서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에너지정책은 각 국가의 산업 여건과 수급 사정을 반영해야 한다. 잘못된 모색과 시행착오는 비싼 수업료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지난 5년 우리는 탈원전 정책과 신재생 위주 에너지 전환이라는 일방적 목표 아래 어려움을 겪었다. 그동안 값싸고 최고 품질을 자랑하던 전력산업계는 적자 늪에 빠져 전기요금 인상이 목전에 다가왔다. 선배 전력인들이 불굴의 의지로 자립한 원전 건설기술과 생태계는 무너져 40년 모범국이자 수출국이라는 위상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백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는 기본과 에너지원의 93% 이상 수입하는 국내 부존자원 문제 등을 간과한 정책이 부른 참사다.
AI, 빅데이터 등 경영 패러다임이 격변하는 상황에서 백년대계는 과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향후 분산형 전원, 실시간 거래와 수요관리가 가능해진 환경을 고려하고, 전문가 동의 하에 타당한 계획수립과 실천을 전제로 지나친 원전 지상주의와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한 풍력과 태양광 중심의 신재생 만능주의를 넘어 최적의 전원 믹스를 다시 찾아야 한다. 왜곡되지 않은 팩트 중심 데이터를 반영하여 이탈된 궤도를 바로잡아야 하고, 이는 빠를수록 좋다.
70%에 이르는 국민이 탈원전 문제를 의식하게 됐다. 신재생 71%라는 계획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규범화하는 넷 제로의 탄소배출 억제 목표 달성에는 원전이 불가피하다는 세계적 추세, 간헐성과 OECD 최하위 신재생 발전 여건이 초래할 전력공급 불안정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조속히 탈원전 정책 폐기를 대내외에 천명함으로써 해외원전 수주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
대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연일 후보자마다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큰 공약(公約)의 경쟁적 발표로 시끄럽다. 요소수 사태를 되새겨 볼 때 자원과 에너지 공급의 지속성 여부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현실 인식 하에 에너지 부문 거버넌스 혁신이 필요하다. 이념이나 정권적 이해에 기반한 자의에서 벗어나 과학과 기술, 경제성 그리고 환경 관점에서 전문가 견해와 부존자원 빈약이라는 현실을 고려한 정상화를 기대한다. 잘못과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개인과 기업은 존속할 수 없다. 현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꿀 수 없다면 차기 정부는 정파적 이해를 넘어 보편타당성과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먼 얘기처럼 들리는 사회상을 좇아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할 공직자부터 샐러리맨으로 변화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현실이다. 때론 사명감보다는 주어진 일을 무탈하게 마치는 방관자적 태도로 임하곤 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한다. 에너지 정책이 백년지대계의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기회는 언제까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 기회를 잡지 못한 대가는 오롯이 국민 몫이다.
박규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7912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