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될 소식이 연달아 당도했다. 미국에서 돼지 장기를 사람 환자에게 이식, 정상 작동을 확인한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와 의료센터 연구진이 돼지 심장을 말기 심장질환 환자에 이식, 즉각 거부 반응이 없음을 확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치 사람 심장처럼 정상 작동하는 것도 확인됐다.
20일에는 돼지 신장을 뇌사자 체내에 이식, 정상적으로 기능한 것을 다룬 논문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앨라배마대 의료진이 지난 9월 뇌사자 신장을 제거하고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연구진은 이식 23분 만에 돼지 신장이 소변을 생성하기 시작했으며, 여타 문제점은 없었다고 밝혔다.
신장 사례로는 비슷한 시기 뉴욕대 것도 있다. 뉴욕대 랑곤 헬스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신부전증을 앓는 뇌사 상태 환자에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이런 사례들은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동안에는 다른 종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장기 이식' 성공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간 장기 이식도 쉽지 않은 마당에 종을 달리하는 것이 쉬울리 없다.
우리 몸이 새로 들어온 장기를 이질적인 것으로 판단, 공격하는 '거부 반응'이 제일 큰 이유다. 면역은 나쁜 것을 막는 장벽인데, 좋은 것도 섣불리 통과시키지 않는다. 1984년 개코원숭이 심장을 유아에 이식한 사례가 있었는데, 거부 반응으로 겨우 3주를 버텼다.
유전자를 조작한 형질전환 돼지가 이번 성공을 가능케 했다. 여러 유전자를 조작했는데, 특히 인체에서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 3개를 인위적으로 제거했다. 또 사람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삽입하기도 했다.
돼지가 선택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돼지는 사람과 장기 크기가 유사한 동물이다. 이런 물리적인 이유 외에도 유전자 조작이 쉽고 종간 감염 전달 위험이 크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번식이 빠르고 생육기간도 짧아 빠르게 유전자 조작 장기를 공급할 수 있다.
영장류 동물은 사람과 유전적 거리가 가깝다는 인식 때문에 장기 이식에 유리할 것 같지만, 정작 장기 크기가 많이 다르다. 종간 감염 전달 위험도 크다.
물론 형질전환 돼지, 이를 활용한 이종장기 이식이 아직 완벽한 해답으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이식 후 근 시일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차후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다. 종양이 생길 수도 있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동물 감염병이 사람에게 전달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보다 안전성을 확보하는 연구가 필요하고, 이를 검증해야 한다.
윤리적인 것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유전자 조작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물론이고, 돼지를 멸시하는 종교도 있다. 이런 장기를 만드는데 많은 비용이 드는 만큼 경제적 불평등이 생길 수도 있다. 돈 많은 이들이 이종 장기를 독식할 우려가 있다.
숙제는 많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장기 이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형국이다. 안전성이 확인되고 생산 수율이 확대된다면 앞으로 수없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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