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회사 경영 사정으로 이차전지 소재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국내 소재업체 A사 임원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소재 사업부 매각에 여러 차례 탄식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첫 매출을 올렸고, 수출길도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대형 암초를 만나 모회사 월 매출은 40억원에서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에너지와 산업기계, 건설자재 등 주요 사업도 당장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차세대 성장엔진인 전지소재 사업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는 LFP 소재를 드론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LFP 소재 배터리 성능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전기차 적용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사업부가 매각되면 모두 좌절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소부장 업계는 중대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에 섰다. 소부장 분야는 투자액은 높은 데 비해 당장 수익은 내기 어려운 구조다. LFP 소재는 중국 제품 대비 국내 탑재가 쉽지 않다. 중국은 애초 LFP 분야에 집중해 왔고,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중국 기업끼리 상생 협력 비중도 높다. A사도 수익 딜레마에 빠졌다. 조금만 더 버티면 드론, 전기차 등 모빌리티 분야에서 LFP 소재 특수가 기대되지만 수익을 못 낸다는 이유로 당장 사업을 매각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기업에서 우선순위는 이익 창출이다. 이것이 전제돼야 후속 투자와 연구개발(R&D)도 이어질 수 있다. 시장원리에 따르면 A사 소재사업부는 아쉽지만 정리될 수밖에 없는 단계이다. 시장원리만 내세운다면 기업과 산업의 미래는 없다. 세계 1위를 호령하는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산업도 수십년 적자를 이겨 낸 끝에 얻은 결실이다.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사업도 12년 연속 적자 끝에 지난해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 사업 전체 흑자 규모는 무려 1조원에 달했다.
LFP 소재도 유망한 분야다. 급성장하는 전기차를 필두로 모빌리티 산업과 함께 '황금어장'을 형성할 수 있다. 모기업이 경영합리화 논리에만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장 돈이 안 된다고 정리하는 것보다 미래 투자라는 관점에서 멀리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릿고개와 같은 시기다. 대기업이 상생 협력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것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무조건 소부장 국산화를 주장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조건이라면 생사기로에 선 우리 중소업체의 손을 잡아 주면 금상첨화다.
소부장 산업의 외산 종속이 불러온 폐해는 이미 일본의 수출금지 보복으로 실감했다. 국산 대체재가 많을수록 대기업의 소부장 구매 협상경쟁력도 높아진다. 대기업도 국내 중소기업과 협력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우리 산업의 미래 싹이 피지도 못하고 시들지 않도록 안팎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시기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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