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는 10만명이 사는 섬이다.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눈다. 개인 재산이 없다. 필요한 만큼 갖다 쓰니 거래가 없고 화폐도 없다. 의식주 걱정이 없지만 사생활도 없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은 복숭아 숲이 끝나고 작은 동굴을 지나면 나온다. 비옥한 논밭에다 연못과 숲이 있고, 세상과 떨어져 즐거운 삶이 있다.
양은냄비에 던져진 라면처럼 메타버스가 끓고 있다. 현실처럼 경제·사회·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가상공간이고, 21세기 유토피아·무릉도원이다. 산 넘고 물 건널 필요가 없다. 간단한 조작으로 들어가는 별천지다. 로블록스의 게임 플랫폼에선 이용자가 게임을 만들어서 즐기고, 아바타로 소통한다. 월평균 이용자는 1억5000만명, 일평균 접속자는 4000만명이다. 가상화폐 로벅스를 통해 거래도 가능하다. 네이버 자회사 제페토는 글로벌 누적 가입자 2억4000만명을 보유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가수 블랙핑크, 있지(ITZY)가 공연·팬미팅을 열었다. 아바타에 유명 브랜드 옷을 구입해서 입힐 수도 있다. 디센트럴랜드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현실(VR) 플랫폼이다. 이용자가 직접 땅을 사서 소유할 수 있고, 가상화폐 마나(MANA)를 통해 거래할 수 있다.
메타버스는 인터넷, 모바일에 이어 시장의 강자가 되려 한다. 왜 메타버스일까. 대기업과 기술기업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비대면 경제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돈이 남아돈다. 신장된 매출과 회사 가치를 기반으로 메타버스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충분한 실탄을 가지고 경제식민지를 찾는 21세기 콜럼버스, 마젤란이다. 뒤안길로 사라진 세컨드 라이프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자금, 기술, 사람이 준비되어 있다. 미국 NBA 농구 슛 동영상, 최초 트위트 메시지를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NFT(Non Fungible Token)로 만들고, 경매로 고가에 판다. 메타버스에서 NFT를 통한 디지털 거래도 예상된다. 메타버스 아바타가 입는 명품 의류가 수백만원에 거래된다. 실물경제를 중시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일종의 보여 주기 붐업 프로모션이다.
눈길을 끄는 것엔 성공했다. 메타버스가 진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자주 방문하고, 오래 머물러야 한다. 놀고 즐기는 음악, 미술, 게임 등 킬러 콘텐츠 공급이 중요하다. 메타버스가 플랫폼 역할을 해서 판매자·구매자 교류가 늘고, 품질 좋은 재화와 서비스가 많이 거래되어야 한다. 특히 메타버스에서만 팔고 사는 가상 재화(virtual goods)의 품질을 높이고, 종류를 늘려야 한다. 이용자가 늘면 광고주가 들어온다. 정부기관, 기업도 입점해서 공공·민간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용자 증감률이 핵심 지표다.
이용자만 늘면 메타버스가 성공한 것일까. 구매력을 갖춘 기업·개인이 들어와서 가상 재화·서비스를 사야 한다. 그러자면 오프라인엔 없고 메타버스에만 있는 우량 상품이 많아야 하고, 거래가 쉬워야 한다. 그것만이 메타버스를 새로운 시장과 경제 영토로 만드는 길이다. 기업 각자가 운영하는 메타버스도 서로 접속해서 A사 메타버스를 이용하다가 B사 메타버스로 쉽게 이동하는 것도 좋겠다. 기술표준, 호환성이 중요하다. 고객이 사업자 변경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 쉽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자.
정부가 할 일도 있다. 물이 너무 맑아도 문제지만 너무 흐려도 문제다. 불법이 판치면 메타버스는 망한다. 누구나 메타버스를 신뢰할 수 있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자. 메타버스 액세스를 쉽게 하는 정책을 만들자. 법적 장애를 미리 살펴서 가상공간 규범을 정비하자. 메타버스는 흙과 물, 공기로 이뤄지지 않은 새로운 하늘과 땅이다. 우리가 콜럼버스를 보내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보낸다. 눈치만 보다간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없다. 과감한 행동이 필요한 때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