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피보다 진한 밈(Meme)](https://img.etnews.com/photonews/2202/1499609_20220204132043_923_0001.jpg)
밈(meme)은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지은 '이기적인 유전자'란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유전자(gene)와 대비된 문화의 전달 단위를 의미한다. 그는 종교나 음악 같은 예를 들며 문화적인 요소는 유전자와 비슷하게 모방을 통해 전파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밈은 유전자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전파될 뿐만 아니라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유전자와 흡사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직접 본 적도 없고 말도 잘 통하지 않지만 같은 게임 '로블록스'를 하는 미국 또래와 명절에 얼굴을 몇 번 본 먼 친척 아저씨 중 누가 아이들에게 더 가깝게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당연히 전자다. 그게 밈의 위력이다.
밈은 거의 모든 삶의 요소에서 발견된다. 같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나 주인공의 특이한 행동, 말투 같은 것들부터 스포츠 팀의 응원도구나 구호, 특정 정치적 성향이나 독특한 취향 혹은 취미를 공유하는 것, 하다못해 나와 똑같은 유튜브 채널을 구독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반갑고, 대가 없이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 이런 현상은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친족 간에 서로를 돕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 범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밈이 넓다.
밈은 그저 관념 덩어리가 아니라 사회적 실체가 된다. K-드라마, K-팝, 먹방 같은 K-콘텐츠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한국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한국어와 한국제품을 선호하고, 기회가 된다면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 집보다 더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그것도 잠시 잠깐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거나 가끔 대를 이어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설명하는데 왜 뜬금없이 문화적 요소인 밈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해야 밈의 현재와 미래 이해에 중요한 맥락을 잡을 수 있다. 유전자가 스스로 지키는 방법 중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방법은 널리 복제해서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생존 환경이 척박하거나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경우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불리하다. 그럴 때 밈은 유전자 역할을 대신해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보전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요즘처럼 1인 가구 확산과 비혼 혹은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가 느는 시대에는 유전자 전달이 수월하지 않다. 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이후 세대는 자손을 낳기보다 자기가 만든 밈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복제하는 욕망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예상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영상, 텍스트 등 SNS는 밈의 전쟁터로 바뀐 지 오래됐다. 밈을 쉽게 만들고 전파할 수 있는 서비스는 성공한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이다.
자신들의 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그 밈을 훈계나 계몽 대상으로 삼는 이들을 '꼰대'라고 부른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대체로 꼰대 논리는 유전자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그 밑천으로 결혼하고 자식 낳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척 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오래된 세계관에서 흘러나온다. 세대 간 갈등은 세계관 갈등이자 밈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다. 옳음과 그름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를 어떻게 포용하는가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또다시 젊은이들의 밈이 이슈가 되고 있다. 게임 공약과 관련한 후보들의 행보는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 게임 하는 이들 대부분은 투표권이 있는 유권자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국민 중 일부다. 게이머 표를 받아 당선된 후보가 주권자의 취미생활을 어린아이 취급하고, 심지어 정신병 환자 취급을 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게임이라는 밈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주권자에게 그 밈이 대단히 소중할 수 있음을 아는 지도자라면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심리학박사 zzazan0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