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의 호소]가업승계 벽에 부딪힌 중기…정책 전환해 제2 창업 도와야

대표 고령화로 가업승계 수요 늘어나지만
상속세율 부담 크고 지원제도 활용 어려워
"기업 유지·성장으로 국가경제 기여"
지원법 뒷받침으로 '제2 창업' 끌어내야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가업상속 지원 제도 활용 현황중소기업 대표자(제조업) 연령 현황

#1973년 창업한 욕실자재 업체 A사는 현재 대표가 70대로 가업승계를 준비 중이다. 주력제품은 플라스틱 자재인데, 신사업으로 절수형 양변기 사업을 검토했다. 그러나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되려면 중분류 코드가 같아야 해 사업확장을 보류했다.

#가업승계 준비를 하는 조명기기 전문기업 B사는 최근 전기시공 매출이 급증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공 매출이 늘면서 주업종도 제조업(C)에서 건설업(F)으로 변경됐다. 문제는 업종 변화에 따라 가업승계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 난감한 상황이 됐다.

[中企의 호소]가업승계 벽에 부딪힌 중기…정책 전환해 제2 창업 도와야

국내 중소기업 대표 중 70세 이상인 법인이 1만개를 넘어선 가운데 가업승계가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남아 있다. 상속세가 가장 큰 부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업종변경 제한, 최대주주 지분율 요건, 고용 유지 조건 등 걸림돌이 많다.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기업도 속출한다. 중소기업계는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식과 경영 노하우 전수'이자 '경제의 안정성 제고와 일자리 창출'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높은 세금에 가로막힌 가업승계

중소기업 대표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가업승계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창업자의 고령화로 승계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 대표 중 60세 이상 비중을 보면 2010년에는 13%였으나, 2019년에는 26.2%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가업승계 수요는 높지만, 실제 승계 과정은 험난하다. 무엇보다 높은 상속세율이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지난해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98% 기업이 '막대한 조세 부담 우려'를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다. 그러나 최대 주주의 주식을 상속할 때는 할증이 돼 최고세율이 60%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은 상속세율이 55%이고, 영국은 40%, 독일은 30%다. OECD 평균은 26.6%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중소기업 승계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긴 하다. 가업상속 공제제도는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해준다. 가업승계 주식에 대해 100억원까지 증여세 과세특례를 해주는 제도도 있다.

◇까다로운 조건에 가업승계 지원제도 활용도 낮아

우리나라 가업승계 지원제도 활용도는 연간 300건에 못 미친다. 충족해야 하는 사전·사후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업종변경 제한이다. 상속 후 10년 이상 가업을 경영해야 하고, 상속 개시 이후 7년간 업종을 변경할 수 없다. 표준산업분류표상 중분류 내에서만 업종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계는 4차 산업혁명, 탄소중립 등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기업이 변화해야 하고, 가업승계 기업 역시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뿐 아니라 최대주주 지분율, 자산유지, 고용유지 등 조항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때문에 가업상속 공제제도 활용 건수는 연간 100건도 안되고, 증여세 과세특례 역시 200건 내외에 그친다.

반면에 독일은 기업승계 세제지원 시 업종유지 및 가업경영기간 제한이 없어 제도 접근성이 높다. 연평균 활용건수는 1만건이 넘는다. 일본도 2018년 사업승계 시 증여세와 상속세를 전액 유예하거나 면제해 주는 특례제도를 도입한 이후 제도 신청 건수가 3815건으로 전년 대비 10배가량 급증했다.

◇과감한 지원으로 '제2 창업' 지원해야

중소기업 대표들은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개인의 상속이 단순히 재산을 물려받는 일이라면, 가업승계는 기업을 승계하고 유지·성장시킴으로써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고용은 물론이고 국가 세수도 창출한다. 가업승계 지원은 세금 감면과도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승계 후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세금을 추징하기 때문에 징수유예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계는 가업상속 공제제도의 사전·사후 요건 현실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유로운 업종 변경을 통해 시대 변화에 기업이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피상속인의 최대주주 지분율 완화도 필요하다. 현재는 비상장기업은 50%, 상장기업은 30% 이상이 사전요건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이 성장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지분 분산이 불가피하다. 중소기업계는 비상장기업은 30%, 상장기업은 15% 이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와 함께 100억원인 증여세 과세특례 한도를 500억원인 가업상속 공제 한도까지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는 지난달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가업승계 토론회에서 “중소기업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상속세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사전·사후 관리요건이 까다로워 활용이 미미하다”면서 “피상속인의 최대주주 지분요건 완화,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사태 시에 고용유지조건을 탄력적으로 적용, 가업상속 자산의 처분 제한비율 확대,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제도 한도를 가업상속공제 한도와 동일하게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이 체계적으로 승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승계지원법(가칭)'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가업승계 세제에 관한 모든 사항을 조세법에서 정하고 있어 중소기업 현실을 반영한 요건변경 등이 어렵다”면서 “'중소기업승계지원법' 제정 등을 통해 중소기업 승계 지원 목적을 분명히 하고, 지원대상 및 요건 등을 규정해 타법에서 '중소기업 승계 지원법'에 근거해 지원할 수 있도록 법체계가 구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 가업상속 지원 제도 활용 현황(단위:건)

자료:국세통계포털

※ 중소기업 대표자(제조업) 연령 현황

자료:중소기업 실태조사

※ 가업승계 관련 중소기업계 건의사항

자료:중소기업중앙회

[中企의 호소]가업승계 벽에 부딪힌 중기…정책 전환해 제2 창업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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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윤건일 벤처바이오부장(팀장) benyun@etnews.com, 권건호·유근일·조재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