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든 피조물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그리스신화에는 키프로스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신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아 문란한 생활을 하는 여인을 혐오하지만 자신이 돌로 조각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감동한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고, 피그말리온은 그 여인과 결혼한다. SF소설 작가 아서 클라크의 소설에는 온라인에 살고 있는 반려동물이 바다를 그리워하자 주인이 로봇 옷을 입혀 실제 바다로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실제와 가상이 뒤죽박죽인 세상이 오고 있다.
디지털이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SNS, 게임, 메타버스 등 온라인에는 자신의 특징을 살린 아바타를 만들어 활동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뉴스앵커, 대선후보를 모방한 인공지능 인간도 등장했다. 로봇 중에도 인간을 모방한 휴머노이드가 있다. 인간처럼 듣고 말하고, 감정과 의사를 표현한다. 최근 온라인에서 활약하는 가상인간이 늘고 있다.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는 국내 최초의 가상 인플루언서로 22살 여성 로지(ROZY)를 만들었다. 신한라이프 광고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약 11만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LG전자가 만든 가상여성 김래아는 엔터테인먼트 기업 미스틱스토리와 협업해 가수 데뷔를 앞두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가상현실 게임 포커스온유의 주인공 한유아를 가상인간으로 만들었다. 블룸버그통신은 가상인간 시장이 2025년 기준 14조원 규모로 커진다고 한다.
가상인간에 쏠린 관심이 뜨겁다. 죽 끓듯 하는 인간의 변덕과 사회에 대한 실망이 원인이다. 실감 나는 얼굴 표정과 섬세한 몸짓을 만드는 기술도 한몫하고 있다. 장점은 뭘까.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쓰면 최고 수십억원을 내야 한다.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맞추느라 고생한다. 모델의 스캔들은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 가상인간을 모델로 쓰면 그런 위험이 없다. 기업의 입맛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 쓸 수 있다. 사람처럼 애니메이션·웹툰·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가수가 되어 노래하고 콘서트를 열 수 있다. 가상인간이 함께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시간대별로 연출할 수 있다. 가상인간과 동일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 함께 활동할 수 있다. 가상인간이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면 그것도 재미있겠다.
문제는 없을까. 가상인간의 명예를 훼손하면 어떤 책임을 질까. 가상인간은 사람이 아니므로 명예가 훼손될 수 없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 되면 가상인간을 운영하는 기업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될 순 있겠다. 가상인간을 성희롱하면 성범죄의 책임을 질까. 사람이 아니므로 성범죄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가상인간이 사람을 대신하는 아바타로 만들어진 경우 그 사람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에 대한 성희롱이 될 수도 있겠다. 해킹 또는 바이러스 침투를 통해 가상인간의 활동을 방해하면 업무방해가 될까. 가상인간을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 기존의 가상인간과 비슷한 가상인간을 만들어 활용하면 저작권 또는 특허권 침해가 될 수 있다. 가상인간을 NFT로 만들거나 기타 방법으로 판매해도 될까. 사람이 아니고 데이터 또는 물건이므로 팔아도 문제가 없다. 인기가 있는 가상인간을 높은 가격에 그 운영기술과 함께 팔 수 있다. 가상인간이 실제 사람을 모방하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의 동의가 없다면 인격권·초상권 침해가 된다. 가상인간과 결혼하겠다고 덤비는 21세기 피그말리온이 나올지도 모른다. 법적으론 생각할 수 없다.
가상인간을 이용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 순 있지만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를 불러와선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 존중의 정신과 가치 아래 이뤄져야 한다. 시장이 사람 위에 있을 수 없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
et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