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사과를 요구했다. 현직 대통령이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면서, 대선에서 영향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를 겨냥해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 했단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건지 대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며 윤 후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발끈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감히 어디서 적폐라는 말을 입에 담냐”고 분노했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고, 당선되면 현 정부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 청산 수사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검찰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여당 주장에도 “검찰 공화국 같은 소리 하지도 말라. 수사도 못 하게 검찰총장을 직무 배제하고 총장을 파출소 수사관만도 못하게 짓밟은 사람이 누군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눈만 한번 바로 뜨면 밟히는 데가 검찰이다. 민주당 정권 사람은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청와대는 전날 고위관계자가 기자들을 만나 이같은 윤 후보 발언에 “불쾌하다” “지켜야할 선이 있다”고 강하게 항의한 바 있다. 이틀 연속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 윤 후보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선 셈이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부당한 선거 개입'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원칙론에 대해서 급발진하면서 야당 후보를 흠집내려는 행위는 명백한 선거개입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도 “청와대와 민주당은 자신들이 적폐청산의 심판자이지, 대상자는 아니라는 오만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대선 개입이 아니라 허위사실을 바로 잡고 사과를 받으려는 것”이라고 했지만, 정치권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지지율이 35% 박스권에 갇힌 이재명 후보가 부인 김혜경씨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지지세력 중 일부가 이 후보가 아닌 윤 후보를 택한 것도 고민이었다.
이런 가운데 경선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가 총괄선대본부장직을 수락하고 문 대통령이 윤 후보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친문(재인 대통령) 세력 결집을 노렸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정치는 타이밍이라고 했다. 이 후보에게는 이낙연 전 대표가 힘을 실어준데다, 대통령까지 윤 후보를 비판하면서 흩어졌던 호남 2~3%, 친문 2~3% 지지를 흡수하면 단일화 못지않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바라봤다.
반면 국민의힘 측의 '정권교체' 프레임에 청와대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 후보에게 갈 친문 지지층은 이미 갔다고 판단된다. 윤 후보 인터뷰는 대선 구도를 정권교체, 정권심판으로 확정하려는 의도로 읽히며, 나아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것으로 청와대와 여당이 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록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가)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사과하면 깨끗하게 끝날 일”이라면서 “이런 사안으로 대통령을 선거판으로 불러낸 것에 정말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문 대통령 사과 요구에 즉답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을 두 차례 강조했다. 윤 후보는 “우리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사정을 강조해오셨다. 저 역시도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늘 법과 원칙,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려왔다”고 했다. 특히 “저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 문 대통령님과 저는 똑같은 생각이라 할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집권 시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며 “제가 당선되면 어떤 사정과 수사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는 말씀을 지난해 여름부터 드렸다”고 강조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