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감염자가 하루 3만명을 넘으면서 2년간 유지된 틀어막기식 'K-방역'이 자율적 자가진단과 자택격리 방식으로 전환됐다. 전파속도가 빠르다는 홍역과 볼거리 수준이라니 별도리가 없는 일이다. 개당 3000원이던 자가진단키트가 4만원까지 폭등하며 마스크에 이은 '키트 대란'도 일어났다. 무엇보다 자가진단키트 검사의 정확도가 들쭉날쭉이라며 혼란상태다. 검사 결과 양성이면 나는 코로나에 걸린 것일까, 아닐까. 죄송하게도 정답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토머스 베이즈는 18세기 영국 목사다. 베이즈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확률을 탐구했다. 아침 해가 뜨고 저녁 노을이 진다. 삶은 내일로, 모레로 이어진다. 바람이 불고 풀이 눕는다. 신도들의 고해성사가 이어지고, 기적 관련 소식들이 들려온다. 베이즈는 신의 섭리에 관한 이 모든 관찰과 자각들을 계산에 넣어 신의 존재를 확률로 증명하려 했다. 관찰과 경험을 새로 추가할수록 확률이 갱신되며 점점 더 명료해졌다. 오늘날 의학적 진단 과정을 설명하는 조건부 확률과 역확률 이론의 탄생이다. 관찰 데이터가 많을수록 추론이 좋아진다. 거의 모든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바탕이다.
코로나 환자의 기침·발열·두통 발생률은 알기 쉽다. 환자 100명을 모아서 기침, 발열, 두통 증세를 보이는 환자 수를 세면 된다. 하지만 의학적 진단은 역방향이다, “기침·발열·두통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가 코로나 감염일 확률은 얼마인가?” “자가진단키트 검사가 양성이면 코로나 감염 확률은 얼마인가?” 어렵다. 기침하는 사람, 열나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무슨 병인지 샅샅이 찾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는 없다. 찾기 쉬운 환자 중 유증상 환자 비율만 알려준다. 놀랍게도 베이즈의 조건부 확률과 역확률 이론은 증상을 관찰해서 병에 걸렸을 확률을 계산해 준다. 문득 마주친 아름다운 저녁노을로 신의 존재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 자가진단키드 검사 결과로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확률을 계산할 수 있을까? 의사로서 부끄럽지만 아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동네마다 다르다. 무슨 의학이 그러냐고? 사전확률 때문이다. 장안에 코로나 환자가 매우 적다면 나도 걸리지 않았을 확률이 높고, 코로나가 창궐 중이면 나도 걸렸을 확률이 높다. 발생 이전이었던 2018년이라면 검사가 양성이라도 코로나에 걸렸을 확률은 없지 않은가? 2월 말 하루 감염자가 20만명이 되면 내 확률도 함께 높아진다. 점쟁이와 다를 바 없다고? 그렇다. 점쟁이가 용한 이유다. 예를 들어 20대 대학생이 점집에 갔다고 하자. 학업문제, 연애문제, 취업문제 중 한두 가지 고민은 다들 있을 것이다. 눈빛을 살핀 점쟁이가 슬며시 떠본다, “에그, 짝사랑이 도망갔어?” “아니요, 그게 아니고….” “응, 요즘 취직도 안 되고 공부하기 힘들지?” “어휴, 어떻게 아셨어요? 저는 아직 한마디도 안했는데요. 정말 용하세요!” 20대 남녀면 다 있을 이 세 가지 고민의 '사전확률'은 거의 100%다. 점쟁이는 용한 게 아니라 확률을 잘 터득한 거다. “너 사람이지?”처럼 그저 당연한 '예언'일 뿐이다.
자가진단 양성자 4명 중 1명은 오진이라는 보도로 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식약처는 민감도 90%, 특이도 99% 이상인 자가진단키트만 허가한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 환자 10명 중 9명에서 양성이 나온다는 뜻이지 양성이 나왔다고 해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역확률은 아니다. 사전확률이 인구의 2%인 100만명 정도인 현재 민감도 90%인 자가진단키트로 양성이라면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확률은 65%로, 셋 중 두 명도 안 된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사전확률이 3%(150만명), 5% (250만명), 10%(500만명)로 증가하면 확진확률은 각각 74%, 83%, 90%로 올라간다. 사전확률이 50%를 넘어가면 동전 던지기 수준의 민감도 50%인 진단키트라도 98%의 확진확률을 보인다. 검사할 필요가 거의 없어진다는 뜻이다. 진단하느라 소란 떨지 말고 치료와 돌봄과 일상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이제 그 길었던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 스트레스로 골치 아픈 조건부 확률, 역확률, 사전확률의 의미를 짚어 보았다. 베이즈의 소망처럼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자연 섭리에는 어느 정도 다가간 듯하다. 노약자를 보호하느라 어린 학생들의 학업 피해가 너무 컸다. 모두 건강하시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터널 끝 밝은 세상에서 또 만나뵙기를 기원드린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