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디지털시대의 실존(實存)](https://img.etnews.com/photonews/2202/1498640_20220214131145_981_0001.jpg)
기원전 약 500년께 인도 네팔 접경지역 카필라국의 왕자가 보장된 자리와 처자식을 버리고 29살 늦은 나이에 집을 나갔다. 당시 부족국가가 난립했는데 정치투쟁에 패해서 추방됐다는 견해가 있었다. 남아 있고 싶은데 달래서 내보내는 권고사직 같은 것이다. 물론 통설은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가했다는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 이야기다. 공동체를 버리고 자신의 해탈만을 위해 떠난 그가 평가받는 이유는 뭘까.
현생인류 크로마뇽인은 뇌와 덩치가 큰 네안데르탈인을 물리치고 인류 대세가 됐다. 네안데르탈이 소규모 가족생활을 했다면 크로마뇽인은 대규모 공동체를 이뤄 살았다. 규모의 경제를 이뤄 생존과 번식이라는 공동 목적을 달성해서 우위를 차지했다. 공동체는 세월이 흐르며 더욱 커진다. 소속원은 공동체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따라야 살아남는다. 저항하는 것은 개인주의로, 공동가치를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자신의 개성을 누르고 보편적인 남의 삶을 살도록 강요받았다. 각자의 개성이 있어도 남과 같이 되고 싶은 목표의 다른 수단에 불과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디지털시대의 실존(實存)](https://img.etnews.com/photonews/2202/1498640_20220214131145_981_0002.jpg)
사르트르는 1965년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지옥, 그것은 타인'이라고 했다.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잣대로 나 스스로를 판단하는 세상이다. 헤겔은 타인의 뜻대로 사는 사회를 하급사회로 규정하고 그 삶을 타락으로 봤다. 부동산 문제의 원인도 여기 있다. 누구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38평형 발코니 확장형을 꿈꾼다. 타인이 그 집을 선호하니 나도 선호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남이 가는 대학을 가야 하니 서울대를 찾는다.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직장에서도 승진하려면 상사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 나의 개성을 숨기고 상사의 입맛을 따르려니 힘이 든다. 잘난 남처럼 돼야 성공한 삶이 된다.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삶이 주체적일 수 없다. 결국 나의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의 삶을 살다 떠나간다.
코로나19 팬데믹, 디지털시대는 어떤가. 만나지 못하게 하니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줄기도 한다. 반면에 온라인 접속은 늘어난다. 클릭만으로 접속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선 여성·장애인·이민자·세대 차별 발언이 쏟아진다. 멋진 신사가 키보드 앞에 앉으면 늑대가 된다. 데이터 폭증시대다. 유독 선거철에 늘어나는 것이 편을 나눠 비난하는 글이다. 뭐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신념에 맞으면 진실이 된다. 타인이 올린 글·영상은 잘난 모습만 보여 주니 이 세상에 오직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 남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니 고통스럽다. 화풀이해야 하니 악플의 악순환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디지털시대의 실존(實存)](https://img.etnews.com/photonews/2202/1498640_20220214131145_981_0003.jpg)
우리는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나는 시골집 행랑방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누군가는 부잣집 안방에서 태어났다. 누구의 자식으로 어디에서 태어날지 결정할 자유는 내게 없다.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살지는 다른 문제다.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가 말했듯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던 상황이 주는 도덕적 굴레를 벗어야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모두가 따르고 싶은, 타인의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정치인, 연예인, 기업인, 교수 등이다. 그들을 보고 즐기면 될 뿐 우리가 그들이 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다. 디지털 세상은 기술, 자본, 인력이 고도화한 세상이다. 혼자 살기가 과거보다 더 어렵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해 시들어 가고.' 시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 나오는 구절이다. 싯다르타처럼 자신이 먼저 해탈하지 않고서는 중생을 구제할 수 없다. 고립을 피하지 말자. 공동체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개성과 자유를 찾는 것이 디지털시대의 실존 확립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디지털시대의 실존(實存)](https://img.etnews.com/photonews/2202/1498640_20220214131145_981_0004.jpg)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