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됐다. 기관 분석에 따르면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에 근접했으며, 머지않아 4만달러 달성이 예상된다. 대선 후보들이 세계 5위권의 선진국 진입을 공약하고 있기도 하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득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앞선 기술과 산업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국민 삶의 질이 높아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이 과학기술 경쟁력이다. 선도적인 첨단산업 확보는 물론 지식 탐구를 통한 국격의 진흥, 환경, 에너지, 보건, 복지 등 국민 삶의 질을 담보하는 필수 요소들이 모두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의 미-중 갈등과 코로나19를 계기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 와중에서 우리나라의 미래 입지를 확보해야만 하는 상황도 과학기술 경쟁력의 필수성을 높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선 후보들이 과학기술을 국정 중심에 놓겠다고 공약하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다행한 일이다. 후보들의 표현과 중점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과학기술 기반의 국정 운영,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자율적 운영, 인재 양성, 과학기술 거버넌스 강화, 과학기술을 통한 미래 경쟁력 확보 등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의 핵심 정책으로 표명하고 약속하는 것과 이를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다르다. 성장을 위한 경제 정책, 산업 분야별 경쟁력 확보, 환경·에너지·보건·복지 등 주제는 각각 매우 중요한 국정과제다.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을 포함하는 정책이 각자 추진되는 가운데 과학기술을 이들 정책 추진에 필요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더 편리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에 혁신 추진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자원이 투입되더라도 실제 성과는 다른 정책 분야에서 발생하는 사례가 많고,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직접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의 실체이자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당위성은 매우 크다. 무엇보다 세계 5위권의 선진국이 되기 위한 미래 비전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산업, 교육, 환경, 복지 등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연계한 대전환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과학기술 데이터 기반의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이를 추진할 과학기술자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예우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연구개발 철학, 연구자 정책, 기초-응용-산업연구 연계, 분야 간 융합 연구, 정부출연연구기관 정책, 인재 양성, 대학 정책 등 다양한 정책을 상호 연계하는 등 지속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과학기술을 분야별 국정과제를 구현하기 위한 파편적 수단으로 간주하면 이룰 수 없다. 예를 들어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 바이오산업, 전략산업 등 각 분야에서 필요한 전문 연구개발 인력을 따로 양성하고 필요한 기술만 따로 개발할 수 없다.
대선 후보들이 과학기술 기반의 국정 운영을 강조하고 깊이 있는 과학기술 정책을 공약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선 이후 이것의 실제 구현 여부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과학기술 중심 국가를 천명했지만 실제로 소수 대통령만이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를 국정 운영 실체로 인정하고 중심 정책을 추진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분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상당한 이해와 더불어 깊은 신뢰를 보여 줬다.
정부 정책 방향 결정은 결국 최고결정권자의 의지와 진정성일 것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정책, 실행 방안과 더불어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 기반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와 진정성이 가시적으로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이병택 전남대 교수 btlee@chon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