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명예회장은 도전 정신과 역발상, 리더십으로 한국 바이오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경영자다.
셀트리온은 2000년 서정진 회장의 사업구상에서 시작됐다. 대우그룹 해체로 실업자가 된 서 회장은 인천 연수구청 벤처센터에서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설립하고 창업멤버들과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가산업의 미래가 생명공학 분야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2001년 세계 바이오산업 중심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머지않아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기 시점이 도래한다는 점을 접하면서 바이오시밀러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위탁생산(CMO) 사업을 성장시킨 서 회장은 “남의 것만 계속 만들 것인지, 아니면 내 것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과감히 CMO 사업을 중단하고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본격 돌입했다. 당시는 고도의 바이오기술과 막대한 임상비용은 물론 대부분 국가에서 허가 규정도 마련되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서 회장은 “안 된다면 내가 앞장서겠다”라는 리더십으로 한국 생명공학회사 중 처음으로 글로벌 임상을 완수했다. 2012년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자체 개발하고 세계 최초로 글로벌 규제기관 승인을 받으며 셀트리온은 글로벌 항체 바이오시밀러 대표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다국적 제약기업과 바이오산업 전문가 모두 “항체 바이오시밀러는 개발하기 어렵다”고 단정지었지만 셀트리온은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자 서 회장은 치료제 '렉키로나' 개발을 주도해 국산 1호 코로나19 치료제 허가를 획득하고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며 항체 신약 개발 능력도 증명했다.
바이오의약품 CMO 사업 기틀을 닦고 바이오시밀러 시대를 연 그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마지막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 헬스케어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구상하고 있다.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고도 집에서 채취한 소량의 혈액만으로 다양한 검사가 가능한 원격 진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은퇴 전 한 행사에서 서 회장은 “코로나19와 고령화로 헬스케어 혁신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으며 혁신의 방향이 인공지능(AI) 원격진료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궁극적으로 AI 원격진료를 위해서는 집에서도 진단 검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수라는 판단이다.
서정진 회장은 지난해 6월 한국인 최초로 '비즈니스 분야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EY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을 수상한 후 “앞으로도 미래 세대를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