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불법 게임물이 국내에서 인기 게임으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심의제인 등급분류제도를 회피했다. 사전심의·검열의 실효성 재고로 규제법령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가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사실이 22일 확인됐다.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는 웹·게임 개발자 루카가 만들어 2021년 12월 세계 최대 전자소프트웨어유통망(ESD) '스팀'에 출시한 인디 게임이다. 스팀에서 4만회가 넘는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며, 최고 접속자 수 7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인디 게임은 물론 '미르4' '레인보우식스 시즈' 같은 대형 게임보다 높은 수치다. 올해 초 입소문을 타고 국내에도 들어왔다.
게임법상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게임은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테스트 목적 게임도 신청해야 한다. 국내 배급은 한국어 지원으로 판단한다.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는 이용자가 한국어화 패치를 제작했고, 게임 제작자가 이를 받아들여 한국어를 공식 지원한다. 한국 배포와 사업 의지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게임위는 불법 게임물의 국내 유통을 거부하거나 퇴출 제재, 형사처분까지 내릴 수 있지만 인기리에 유통되는 것이다. 해외 플랫폼이라는 특성에다 모니터링 부족, 국내 게이머가 많이 이용하는 스팀을 제재한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게임위는 2014년부터 스팀 운영사 밸브를 통해 등급심의 신청을 권고했지만 여론에 밀려 불법 게임물 유통을 묵인하고 있다. 적지 않은 한국 게이머가 많게는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써서 구매한 게임을 구매하고 있는 등 법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사행성·선정성 게임물에 모니터링 관심이 집중된 이유도 있다.
스팀을 우선하면서 국내 법규를 적용하려면 저항하는 이용자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한몫한다. 지난 2014년 박주선 의원이 스팀에서 등급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이 유통된다며 제재를 요구했다가 반발을 낳았다. 2020년에는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인기 게임의 국내 서비스를 제재하려다 철회한 바 있다.
게임위가 2020년부터 해외 게임사가 등급분류제도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절차를 개선했지만 여전히 국내법 무시는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정 금액을 지불한 뒤 등급분류신청을 하고 결과까지 기다리는 국내 게임사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제기된다.
논의되고 있는 게임법 전부개정안에는 등급분류 절차 간소화 내용만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사전검열제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사전심의·검열 존치의 필요성을 심층 재고해서 실효성을 확보하는 한편 역차별을 막을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