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미래 신가전의 조건

지난달 해외 출장을 다녀온 뒤 열흘 동안 자가격리 기간을 보냈다. 집 안에만 있다 보니 가장 큰 이슈는 먹거리였다. 5000원에 달하는 배달비가 부담스러우니 직접 밥을 해서 먹기 시작했다. 유튜브 콘텐츠를 참고해 이것저것 요리를 시도하다 보니 부족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재료나 요리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보다는 에어프라이어, 오븐, 블랜더처럼 여러 주방가전이 있으면 더 좋은 요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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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요리를 마치고 나면 커피도 한잔 해야 한다. 그러자 한창 광고하는 얼음정수기, 커피머신 정수기가 또 눈에 들어온다. 재택근무 기간이 지나도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보려 하면 그날 따라 유난히 TV 화면이 작아 보인다. 침대에 편히 누워 보려면 최근 인기 높은 빔 프로젝터가 떠오른다.

이처럼 코로나19 유행은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 가전 시장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외식, 여행 등 소비활동이 급격히 줄어든 대신 일상생활에서 의존도가 높아진 가전에 구매 수요가 집중됐다. 삼성전자, LG전자의 가전사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 역시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보복소비' 영향이 컸다.

가전 종류도 다양해졌다. TV,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 등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 의류관리기, 건조기, 로봇청소기 등 신(新)가전 성장세도 폭발적이다. 여기에 '힐링 가전'이라 일컫는 식물재배기부터 신발 관리기, 반려동물 가전, 맥주제조기,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등 다양한 가전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늘어나는 가전 수요와 신시장 창출,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세대 등장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다.

가전은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관건은 '공간'이다. 가전이 늘어날수록 비치할 수 있는 공간도 넓어져야 한다. 2020년 기준 전국 가구당 주거 면적은 70.1㎡(약 21.2평)으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다. 가전업계가 주목하는 1인 가구 사정도 마찬가지다. 2020년 기준 청년 1인 가구의 80%가 주거 면적이 좁은 원룸이나 오피스텔, 단독·다가구주택에 거주한다.

취향을 고려한 라이프 스타일 신가전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지만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결국 기능을 쪼개서 출시된 제품이 또다시 기능적 '통합'이라는 트렌드를 몰고 올 공산이 높다. 갈수록 좁아지는 주거환경과 늘어나는 가전에 따른 관리 이슈 때문이다. 유독 국내에서 성장이 더딘 빌트인 역시 아파트 분양시장 중심으로 수요가 커지면서 가전이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동안 보여 주는 가전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숨기고' '합치는' 가전 수요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